로켓 발사에 이은 북한의 도발이 연일 강도를 높이고 있으나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전례 없이 차분하다. 2006년 북한의 대포동 2호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이후 북미대화가 2주일여 만에 전격적으로 성사됐던 것과 대조적이다.
북한의 도발이 갖는 메시지가 미국과의 양자대화를 재촉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을 따른다면 북한은 미국의 관심을 끌어내는데 지금까지는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때문에 북한의 반발이 앞으로 더욱 거칠어지고, 그만큼 한반도의 위기지수는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북한은 25일 영변 핵시설의 폐연료봉에 대한 재처리작업이 시작됐다는 외무성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인 조선신보를 통해 추가 핵실험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익히 예상됐던 시나리오지만 6자회담 파기 선언→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과 미 감시단 추방→핵시설 감시카메라 및 봉인 제거에 이은 잇단 도발 수순이 예상보다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는 미국 정부도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특히 북한이 미국 국적 여기자 2명을 적대행위와 간첩혐의로 공식재판에 회부한다고 발표하면서 북한 미사일 및 핵문제는 여기자 송환 문제와 뒤섞여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은 여기자 문제는 북한 핵ㆍ미사일 문제와는 별개라는 입장이다. 여기에는 '미국시민의 안전이 최우선이며 정치적 흥정이 있을 수 없다'는 원칙이 깔려 있다. 미국 시민의 석방을 위해 북미가 접촉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 접촉이 북한 핵프로그램 문제로까지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로버트 우드 국무부
부대변인은 24일(현지시간) 정례브리핑에서 "여기자 2명이 가족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북한에 계속 요구할 것"이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외교채널을 통해 노력하고 있다"고 해 뉴욕채널을 통한 양자접촉이 진행중임을 시사했다.
6자회담 파기 등 북한의 도발과 관련, 미국 정부는 '나쁜 행동에 대해서는 상응하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여기에는 비핵화라는 미국의 제의를 북한이 받아들인다면 '적극적인 외교'를 통해 파격적인 당근을 제시할 수 있지만, 거부한다면 보다 강력한 압박을 동원할 것이라는 대 적성국 외교기조가 깔려있다.
미국 정부가 북한의 6자회담 복귀가 장기간 미뤄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우선은 유엔 차원의 제재에 전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런 맥락이다. 북한의 미사일 기술이 미국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라는 자체 판단도 이런 결정의 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22일 하원 청문회에서 북한 문제를 거의 언급하지 않은 것은 북한 문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원칙에 따르겠다는, 차분한 대응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두고 북한에 대한 '선의의 무시전략'이라는 말도 나온다.
워싱턴의 한 대북 전문가는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6자회담 관련국 순방이 조만간 예정돼 있고, 또 보즈워스 대표의 방북이 재차 거론되는 상황과 관련, "북미 고위급 접촉을 예상해 볼 수 있지만, 어느 한쪽의 전격적인 양보가 없는 한 현재로서는 돌파구 마련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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