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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전직 대통령의 멍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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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전직 대통령의 멍에

입력
2009.04.2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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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흔히 '사상 최악'으로 평가되는 이는 37대 리처드 닉슨과 43대 조지 W. 부시, 두 사람이다. 실제 역사학자 등의 '대통령 평가'에서 꼴찌 그룹에 붙박이처럼 오르는 이는 부캐넌과 하딩 등 몇몇이 더 있다. 그러나 이들은 먼 과거의 인물인 데다 역사적 비중도 낮은 덕분에 두고두고 욕을 먹지는 않는다. 그와 달리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닉슨은 미국 대통령직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긴 과오를 멍에처럼 짊어졌다. 부시는 테러와의 전쟁 등 일방주의 행보 때문에 나라 밖 평판이 더욱 나쁘다.

■닉슨은 1974년 8월 탄핵 위기에 몰려 사임한 뒤 정치적 기반인 캘리포니아 바닷가로 쓸쓸히 귀향했다. 샌 클레멘트 해변의 자택은 '태평양의 집(La Casa Pacifica)'이라는 자못 호방한 이름이었지만, 강요된 사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닉슨은 비탄에 젖었다고 한다. 사임 한 달 뒤 후임 포드 대통령이 모든 형사소추를 사면하는 조치를 했으나, 닉슨은 그 날 저녁 사과성명을 발표한 직후 왼쪽다리가 잔뜩 부풀어오르는 증상을 보였다. 급히 롱비치 병원으로 옮겨진 닉슨은 다리의 혈전이 심장까지 위협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입원 중 워터케이트 재판의 증인소환 명령을 받고 특별검사와 실랑이를 벌인 닉슨은 혈전수술 뒤 혼수상태에 빠지는 위기를 간신히 넘긴다. 이듬해 봄에야 심신을 추스른 닉슨은 마오쩌둥의 초청을 받는 등 세계 지도자들과 두루 교류하고, 그 내용을 정리해 백악관에 전했다. 또 10권의 책을 썼다. 그렇게 10년 세월이 흐른 뒤 소련의 고르바초프를 만난 소감을 담은 장문의 메모로 탁월한 전략가 면모를 과시했고, 갤럽조사에서 '세계에서 존경 받는 인물 10인'에 포함됐다. 1994년 타계 뒤에는 '뛰어난 대통령'으로 평가된다. 사설 기념관도 2007년 국립으로 바뀌었다.

■또 다른 '사상 최악' 부시는 고향 텍사스의 조촐한 집에 정착한 뒤 낙천적 성품 덕분에 재임 때보다 오히려 평화롭게 지낸다고 한다. 그는 지난달 캐나다 초청 강연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절대 비판하지 않을 것이며, 늘 성공을 기원한다"는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닉슨처럼 새삼 대단한 평판을 얻지는 못하겠지만, 소탈한 '텍사스 촌놈' 처신에 세상의 반감도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저의 집은 감옥"이라며 "안뜰을 돌려달라"고 푸념하는 모습에서 전직 대통령의 멍에를 벗으려면 많은 인고(忍苦)의 세월이 필요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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