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서 도심의 화단마다 꽃들이 새로 심어졌다. 화려한 색감의 팬지가 흔하고 앵초나 꽃잔디도 많이 심었다. 꽃을 보는 마음이 환해지지 않는다. 똑같은 종류를 열지어 심어놓은 것이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는 액자나 도배지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작년 가을까지도 패랭이가 심어졌던 곳인데 하루 아침에 다 엎어버리고 새 식물을 심었다. 이 팬지도 여름이 오면 또 다른 꽃으로 바뀔 것이다.
팬지나 패랭이나 한번 심으면 계속 피고 지는 다년초이다. 그런데도 한 계절을 겨우 살고 죽어나가야 한다. 구청마다 꽃 가꾸기 예산은 매년 늘어나지만, 실상 쓰지 않아도 될 돈을 계절마다 처바르는 셈이다. 서울에서만 다달이 빈곤층이 1,000가구가 늘어난다는데, 안 써도 되는 꽃값을 돌려서 굶는 청소년들 얼굴에서 버짐이 사라진다면 그게 꽃보다 아름다울 것이다.
철마다 꽃 버리는 서울
물질적인 배고픔만큼이나 정신적인 배고픔도 문제이니 아름다운 꽃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 한번만 잘 심어주면 하늘의 비를 맞고 식물이 저 혼자 잘 살 일을 캐내고 다시 심으면서 돈을 버리지 말자.
작년 여름에 서울 연희동에 사는 주부원예가 정 진씨와 함께 서대문구 일대를 답사했다. 도심 화단은 모두 비싼 꽃 일색이었다. 한 포기에 3,000원인 란타나가 빼곡하게 심어져 있었다. 샤피니아, 제라늄, 이탈리아봉숭아 같은 것을 모두 단일종으로 몰아 심어 자연스런 아름다움이 없었다. 어떤 지역은 화려한 꽃과 넝쿨이 벽화를 다 가리고 있었다. 식물로 충분한 곳에 벽화를 그린 예산은 또 얼마나 낭비인가. 여름의 다년초들은 가을에 가니 완전히 사라지고 다른 것들이 들어차 있었다.
정씨는 "봄에 피는 수선화와 금낭화, 여름에 피는 한련화, 가을에 피는 패랭이, 단풍이 고운 남천 같은 것을 두루 섞어서 도심 화단을 꾸미면 봄부터 가을까지 아름답고, 사이에 맥문동을 심으면 겨울에도 푸른 빛을 볼 수 있다. 1년생이라도 매년 씨앗이 잘 터지는 꽃도 다양하니까 토양만 갖춰주면 얼마든지 경제적이고 예쁜 조합이 가능하다"고 제안했다. 하긴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생태를 강조하면서 급하게 만든 화단이 시멘트 내지 돌바닥에 흙을 얇게 깔고 만들어 다년초가 겨울을 나기에 필수적인 두께가 안 되는 곳이 많다. 공공기관의 생태 강조는 늘 허울 뿐이라는 게 화단만 봐도 실감이 난다.
평생 갈 꽃을 심지 않는 것은 서울이나 화단의 생물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연구조차도 이미 되어 있는 것을 토대로 그 위에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 이뤄지지 않는다. 식물분류 연구에서 한국은 일본인 식물학자 나까이가 1909년부터 1952년까지 연구한 것을 기초로 그 후 이영노 이창복 원로 식물학자들이 자비를 들여 방대한 식물도감을 만들면서 체계화를 시도했다. 국내에 있는 식물 4,800종 가운데 4,100종과 3,700종을 기록한 책은 대단한 업적이다. 그러나 학자마다 식물 분류에 대한 견해가 달라 혼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식물연구의 본산인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이 학명과 분류체계의 일관성이라도 만들어보려고 식물학자들과 함께 '국가표준식물목록'을 완성한 것이 2004년이다. 이 목록은 매년 보완되고 있다. 이를 토대로 제대로 된 식물도감과 식물지를 만들 때가 됐다.
같은 국립기관끼리도 자료 안써
그런데 국가의 생물자원을 보전하고 관리한다는 뜻에서 2007년에 세워진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이 식물 업무까지 다시 시작하면서 업무가 중복되고 있다. 오래 식물연구를 해온 수목원이 해야 할 식물지를 이곳에서 만들기 시작한 것도 무리로 보이는데, 그나마 수목원이 축적해놓은 자료를 참고 삼지 않고 있다. 결국 패랭이를 캐내 버리고 팬지를 심는 구청과 똑같다. 이렇게 낭비되는 예산이 전국적으로, 모든 부처에서 얼마나 될지.
서화숙 편집위원 hss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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