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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참여와 물러남의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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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참여와 물러남의 기준

입력
2009.04.2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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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금 이 코너의 원고를 이미 써놓고도 위 제목으로 다시 쓰고 있습니다. '참여(engage)'나 '물러남(degage)'은 사르트르에 의해 널리 퍼진 용어로서, 인간의 실존적 가치는 다른 사람과 맺은 '관계의 질(質)'에 의해 결정되며, 그 방법은 참여나 물러남이라는 겁니다.

그렇지요. 내 가치는 타인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가에 따라 결정되고, 그러자면 행동할 수밖에 없지요. 제가 일생 동안 글을 쓰고, 교단에서 살아온 것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새삼스레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가치 있는 삶이 뭔가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엊그제 우리 정부와 개성 공단에서 열렸던 남북 접촉, 대량학살무기확산방지구상(PSI) 참가 문제, 29일의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청와대 공금횡령 사건, MBC 언론 노조와 전교조 문제에 대해 관계자와 국민들이 행동할 방법에 대해 감히 제 의견을 말씀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참여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대학 1학년 때입니다. 제3공화국이 들어선 직후라서 저항만이 젊은 지성인들이 할 일이라던 분위기에 휩쓸려 실존적 삶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행동뿐이라던 사르트르의 책들을 읽었지요. 그런데, 읽다 보니 상당히 허술하다는 생각이 들대요. 자유인 줄 몰라서 행동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선택의 기준을 모르기 때문에 행동하지 못하는데 그 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내 학술 발표대회 때 <철학의 윤리와 의무> 라는 소논문을 통해 당시 세계적인 석학을 신나게 까부쉈지요. 그리고, 행동하려면 자기주장인 '정(正)'과 '반(反)'의 장점을 합치고 단점은 극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하며, '합(合)'을 발견할 때까지는 물러서고, '합'이 타당성을 지녔는가를 따져보려면 과거의 나를 기준으로 일관성을 지녔는가를 따져보고 잘못했다면 솔직히 사과한 다음 새 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벌써 눈치 빠른 독자분들은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는지 아실 겁니다. 북한이 그토록 국제 관례와 상호 협정을 무시하면서 떼거지를 쓰는 것은 지난 정권들의 '퍼주기' 때문이며, 그 분들도 그게 잘못임을 알면서도 그랬던 것은 북이 붕괴할 경우 '통일 부담금' 때문에 우리도 붕괴하리라는 판단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 북에 대응 방향은 이 두 문제를 충족시킬 수 있는 쪽이어야 합니다.

또, 앞에서 말씀 드린, 차마 거론하기조차 부끄러운 사건(?)의 당사자들은 먼저 과거의 자기주장과 일치하는 행동을 했는가를 따져봐야 할 것입니다. 저는 네 편 내 편 가르는 사람은 아주 싫어합니다. 하지만 편가르기 선수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님의 말씀 가운데 저를 감동시킨 말은 "장인이 남로당원이었다고 아내를 버릴 수 있느냐"고 하신 말씀입니다.

그 말이 진심이었다면 아내 잘못으로 돌리지 말고, 거짓이었다면 여성 표를 의식하고 한 말이라며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민주당도 정동영 선생도 MBC 노조도 전교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 속에 살아 남고 싶은 분들은 '합'이 아니면 나서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했으면 정직하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런 가치관만이 자신뿐 아니라 우리 사회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기에 드리는 말씀이니 오늘 저녁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윤석산 시인·제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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