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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의 미디어 비평] '기업 미디어 장악' 美日사례 반면교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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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용진의 미디어 비평] '기업 미디어 장악' 美日사례 반면교사로

입력
2009.04.2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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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20세기는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 함께 시작한다. 1901년 대통령으로 취임한 그는 어느 대통령보다 언론의 지지를 대대적으로 받았다. 언론의 지지를 등에 업고 그는 기업 집단들의 결합행위를 뒤흔들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기업으로부터 자율성을 구가하던 언론들은 화답하듯 기업들의 비리를 폭로해갔다. 미국 신문의 탐사 보도가 독자들의 호응을 받으며 자리를 잡은 것도 바로 이 때다.

루스벨트와 신문 간 일치된 시대정신은 오래가지 못했다. 온갖 부정과 비리를 폭로당하며 발가벗겨진 기업들은 신문을 사들이기로 결정한다. 기업에 비판적이었던 언론들에게는 높은 광고료를 책정해주며 기업과 금융의 비전을 공유할 수 있도록 순치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것으로 미국 사회 개혁의 바람은 목숨을 다하게 된다.

1920년대 미국은 시장방임적 상황에서 기업들의 이윤 추구로 극도의 혼란을 맛본다. 대공황을 맞은 것이다. 기업에 포섭된 미국 언론은 공황에 이르기까지 실패한 정책들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빈번하게 찬양해왔다. 탐욕스런 기업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지 못한 언론은 대공황을 초래한 또 하나의 공범으로 지목되기에 이르렀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먼 친척 동생이었던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1932년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치유책으로 뉴딜 정책을 내놓는다. 기업의 탐욕을 제어할 공공성을 강조한 프랭클린 루스벨트에 언론은 적대적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시장방임을 주장하던 가속을 주체하지 못했던 셈이다. 뉴딜 정책이 갖던 대중적 인기 앞에 언론은 잠시 침묵을 지키긴 했지만 '시장을 내버려 둬'라는 말을 지속적으로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후 미국 기업들의 언론 장악은 가속되었다. 그런 탓에 공공성보다는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태도는 미국 언론의 신조처럼 되어버렸다. 그 같은 언론의 태도는 2000년대 조지 부시 정권 때 정점에 이른다.

1980년대 레이건 정권을 복습하는 형태를 취한 아들 부시 대통령은 폭력과 선정성, 물질만능으로 눈을 사로잡던 폭스 네트웍과 행보를 같이하는 위험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20세기 미국 정치사의 가장 큰 흐름을 우경화로 꼽는 이들이 늘고 있다. 그 우경화의 행보에 언론은 기업을 거드는 든든한 동반자이거나 주동자로 손꼽히고 있다.

공황에 가까운 경제 파탄이 단순히 경제 운용의 잘못이거나 행정의 잘못이 아닌 기업의 탐욕에 의한 것이었고, 언론은 그 후견인이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미디어에 그 메스를 갖다댈 방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 메스를 대기엔 너무도 커져 버린 탓이다.

일본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1950년대 당시에 새로운 미디어였던 방송을 신문에 넘겨주면서 일본의 우경화 행보는 서서히 시작된다.

대기업을 끼고 있던 신문이 방송까지 안게 되면서 전에 없던 기이한 민족주의, 국가주의가 판을 치면서 일본 사회는 점차 염치없는 사회로까지 가는 역사의 진행을 보게 되었다. 역사교과서를 둘러싸고 보여주는 파렴치함이나 독도를 넘보는 일을 서슴지 않는 이면에 언론의 힘이 도사리고 있었음은 물론이다.

진보적 미디어, 지식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기업과 몸을 섞은 거대 언론들을 이겨내진 못했다. 그래서 현재 두 사회는 탄식에 가까운 곤란을 맞고 있고, 그 여파는 전 세계로 전해지고 있다. 무서운 것은 몇 십년 전에 있었던 그 망령이 한국 사회를 배회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 여파로 몸살을 앓고 있으면서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일들을 교훈으로 삼자는 움직임이 있어 두렵기조차 하다. 어쩌면 미디어 관련법이 치열하게 더 논의될 5월, 6월은 한국 민주주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결정적 국면일 수도 있다. 좀 더 먼 미래를 내다보며 더 넒은 시야로 언론을 고민하는 오뉴월이 되기를 독자 제위께도 권하고 싶다.

서강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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