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8월 함께 방북 했던 당시 언론사 사장들이 며칠 전 점심 모임을 가졌다. "얼굴이라도 한번 보자"는 제안에 따라 방북 이후 처음 갖는 만남이었다. 모임 만들기 좋아하는 우리 사회에서 9년 동안 만날 생각을 못 했다는 것은 바쁘고 메마른 언론계 풍토 탓이기도 하지만, 그간의 남북관계에 풍파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남북관계가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여론이 갈리고 갈등이 깊어지는 분위기에서 모임을 갖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웠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00년 여름 평양을 회상한다는 것은 착잡하고 허망한 일이기도 했다. 동족상잔의 불행한 과거를 덮고 새로운 남북관계를 열어갈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었던 그 날, 남북의 정상이 서로 포옹할 때 남과 북이 함께 울던 그 날… 2000년 여름 우리가 보고 느낀 것들은 신기루였던 걸까.
갈데 까지 간 북한
언론사 사장단 방북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만나 역사적인 6.15 선언을 한 지 50여일 만에 이루어졌다. 남북관계의 해빙을 과시하는 상징적인 행사였다. 전국의 신문 방송사 사장 46명은 8월5일부터 12일까지 평양과 묘향산 백두산 등을 둘러보았고, 김정일 위원장과 오찬을 하며 가까이에서 그를 살펴볼 수 있었다.
북한에서 언론의 자유를 누리는 유일한 인물인 김위원장은 3시간 동안 거침없는 말투로 자신의 생각을 쏟아냈다. 언론사 사장 중에는 기자 출신이 꽤 많았는데, 우리는 많은 질문을 준비했다가 김위원장에게 질문공세를 벌였다. 그는 국내외 현안들과 개인적인 질문에 대해 막힘 없이 대답했으며, 순발력과 유머감각도 상당했다.
남한의 신문들을 보내달라, 이산가족 상봉을 정기적으로 추진하겠다, 장관급 회담을 정례화 하겠다, 당신들이 그 동안 나를 파티에 미친 바람둥이라고 신문에 써 왔으니 벌주를 마셔야 한다 등등…, 김위원장의 구수한 답변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평양에 갈 때 중국을 경유했지만 서울로 돌아올 때는 남북 직항노선으로 왔다. "왜 돈 쓰면서 중국을 경유할 필요가 있느냐"고 김위원장은 큰 소리쳤다.
그가 장담했던 일들은 대부분 이루어지지 못했거나 중단됐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에서도 남북관계가 순조로웠던 것 만은 아니다. 순풍에 돛 단 듯 앞으로 갈 수 없는 북한의 내부 사정, 곤경에 처할수록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는 오랜 습관, 체질화한 '안면 바꾸기' 등으로 북한은 남북관계를 종종 궁지로 몰고 갔다. 비위 맞추기, 퍼주기, 저자세 등의 비난이 우리 정부를 향해 쏟아졌고, 남남갈등이 깊어졌다.
오늘 남북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몰아가고 로켓 발사로 세계에 충격을 주고 있는 북한을 보며 9년 전 화해 제스처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악화, 후계자 문제, 경제난, 국제사회에서의 고립 등으로 벼랑 끝 전술은 한층 더 충격적으로 갈 것이다. 며칠 전 남북접촉에서 보여 준 막무가내 식 태도는 남북관계가 갈데 까지 갔다는 인상을 준다.
우리가 극복할 것은 '남남갈등'
지금 이명박 정부를 탓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 진보정권과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심사숙고가 부족했던 부분이 있지만 그것이 남북관계를 악화시킨 유일한 이유일 수는 없다. 진보정권도 지난 10년 동안 남북관계를 성숙한 관계로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조금이라도 성숙했다면 북한이 어떻게 오늘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있겠는가.
북한에 대해 예측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 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새삼 확인하고 있다. 진보나 보수나 그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정부는 당황하거나 허둥대지 말고, 국민에게 제시했던 원칙을 지키면서 인내심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2000년 여름 평양의 추억은 북한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자료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바로 남남 갈등이다.
장명수 본사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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