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2년차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갈림길에 섰다. 개성공단 운영 방향,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발표 시기, 현대아산 직원 유모(44)씨 억류 사태 등 현안을 놓고 장고가 시작됐다. 전체 방향은 '원칙과 현실의 조화'에 바탕을 둔 대화 추진 쪽으로 가닥을 잡았지만 실제 정책 적용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길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개성공단 운영 방향 어떻게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22일 국회 외통위에 출석, 북한이 주장한 임금 인상이나 토지 임차료 지급 등의 문제에 대해 "현대아산 및 공단 입주기업 의견 수렴을 통해 신중하게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북한이 21일 접촉에서 운영 방안 협의를 제의한 만큼 우리는 검토를 거쳐 역제안을 하겠다는 복안이다.
기본적으로 임금 토지 임차권 지급 등의 문제는 정부 권한밖의 일이다. 입주 기업들이 "나는 절대 임금을 올릴 수 없다. 철수하겠다"고 버틴다면 정부도 운신의 폭이 줄어든다. 그러나 개성공단 임금 수준이 중국 베트남에 비해 현저히 낮고 토지 임차료의 경우 시기나 금액 등 협상 여지가 있으며, 정부가 관리할 수 있는 측면이 많다는 점에서 돌파구를 찾을 수는 있다.
특히 정부는 개성공단 문을 먼저 닫았다는 오명을 피하고자 한다. 이번 기회를 발판으로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겠다는 생각도 있다. 따라서 향후 개성공단 운영 방향을 놓고 북한과 치열한 실리 싸움을 할 의지가 있다.
PSI는 '칼집 속의 칼'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PSI 전면 참여 발표 여부에 대해 "칼은 칼집에 있을 때 힘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현인택 장관도 이날 국회에 나와 "참여 확대 원칙에는 변함이 없으나 가입은 적절한 시점을 택하겠다"고 밝혔다.
여러 발언을 종합하면 'PSI 전면 참여 원칙은 확고하나 발표 시기는 북한의 태도를 보면서 전략적으로 조율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이 외교부의 PSI 가입 조급증을 질타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면서 PSI 발표는 전략적 판단에 따르는 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그래서 PSI 참여는 당분간 물 건너갔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렇다고 PSI 참여 카드를 완전히 접은 것은 아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북한이 PSI는 자신들에 대한 선전포고라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는 끌려 다니지만은 않을 것"이라며 "곧 발표한다거나 무기 연기라는 말은 맞지 않고 향후 남북 대화 과정 등을 지켜보면서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억류 직원의 운명은
개성공단에 억류된 유씨에 대해 정부는 일단 최악의 경우를 막는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21일 접촉도 북한이 유씨를 간첩 혐의로 기소하지는 않을 것임을 확인한 뒤에 이뤄졌다. 정부는 또 국제인권 B규약과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1503호 결의에 따라 유씨 문제를 국제사회에서 이슈화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돼 있다. 북한도 유씨 석방 여부를 대남 압박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유씨 문제의 경우 남북대화 진전 정도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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