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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21) 별들의 경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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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시를 만나다] (21) 별들의 경사

입력
2009.04.2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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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경사-정끝별

캄캄한 하늘에 물관을 박고

밤새 저리 글썽였으니

아침이면 뚝 뚝 떨어져

이만 총총 피어나겠다

난 빛의 속도로

네 심장을 무단 횡단 중이지

이렇게 휘청 기울었으니

악보도 기류의 예측도 없이

이런 어처구니도 없이,

전향과 상실의 블랙홀이야 넌

고양이 씨는 물고기 씨에게 기울고

물고기 씨는 아가씨에게 기울고

아가씨는 고양이 씨에게 기울고

조마 조마 조마 조마

물고기 씨를 입에 문 고양이 씨가 아가씨 품에 안길 때

그때가 빅뱅

새로운 온도가 탄생할 것이다

허공의 씨들은 시간의 깃털

언제나 어제거나 언제나 어제 나

가슴에 묻은 것들만

하늘에 이만 총총 이만 총총

다락처럼 글썽이지

이제 곧 함박눈도 피어날 거야

● 끝별 누님, 하늘의 마지막 물관 아니세요? 그럼 대답해 보세요. 왜 별빛은 물빛이고, 물처럼 흔들리는지. 저녁이면 온통 하늘은 글썽입니다. 그러다 천천히 별자리의 동물들이 다가와 부드러운 혀로 눈물을 핥아주면, 슬픔도 슬퍼했던 이도 지쳐 제가 누구였는지 잊고 사라지지요.

새벽이 온 거랍니다. 이렇게 사라진 별들의 슬픔이 깜짝 깨어나 자기 슬픔을 기억해 내면 어느덧 우리는 겨울 깊은 곳으로 들어와 있고, 애달픈 별들은 저녁이 다되도록 눈발이 되어 날리지요. 그렇게 슬픔이 다 가셔도 저녁 하늘은 어쩌지 못하고 늘 물기 가득한 눈망울이에요. 씨앗들이 다시 하늘의 진흙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 환히 밝아진 물관들이 조용히 우는….

서동욱(시인ㆍ서강대 철학과 교수)

■정끝별 1964년 생. 1988년 '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자작나무 내 인생> <삼천갑자 복사빛> <와락> 등. 유심작품상(2004), 소월시문학상(2008)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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