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 사이 시각장애인들이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고 몸에 쇠사슬을 묶은 채 지하철 선로에 뛰어내리는 모습은 낯익은 광경이 되었다. 시각장애인들에게만 안마사자격을 주는 의료법에 대한 위헌소송이 제기된 때문이다. 평소 알고 지내는 어느 시각장애인 교수는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정말 눈에 뵈는 게 없더라"고 표현한다.
안마사 외 진로 막힌 현실
구약성경에 보면 자기 부하의 아내를 취하려고 부하를 전쟁터에 내보내 죽게 한 다윗에게 선지자가 이런 말을 한다. 양과 소가 많은 부자와 작은 암양 새끼 하나뿐인 가난뱅이가 있는데, 하루는 부자에게 손님이 오자 그는 자기 소유를 아껴 가난뱅이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대접을 하였다.
다윗은 자기를 가리키는 말인 줄 모르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은 부자를 마땅히 죽여야 한다고 비난한다. 선지자는 그 부자가 바로 다윗 당신이라고 하자, 다윗은 군말 없이 자기 잘못을 인정한다는 얘기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사업은 가난뱅이 품에 있는 작은 양 새끼 같은 것이다. 그 양 새끼를 빼앗으려 하니 한강에 뛰어드는 것이다.
언제까지 시각장애인들을 헌법재판소와 한강다리에서 농성하게 할 수는 없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시각장애인들이 안마사 말고도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대학 등 상급학교에 진학할 기회를주어야 하는데, 안마 위주의 현재 교육여건으로는 요원하기만 하다.
각고의 노력 끝에 교수가 된 또 다른 시각장애인 교수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그가 1980년대 초 시각장애특수학교에서 중ㆍ고교 시절을 보내면서 교과서 외에 읽은 유일한 점자도서는 <황강에서 북악까지> (전두환 전대통령 전기)였다고 한다. 개학 후 한참 지나서야 점자교과서가 배포되던 시기에 집권자의 전기가 먼저 점자도서로 번역되어 보급되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다. 황강에서>
작년 이맘때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시각장애인들이 파일을 받아 점자나 소리로 변환할 수 있도록 저작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 글이 나간 후 시각장애아를 둔 아버지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그는 매일 아이에게 좋은 책을 들려주고 싶어 퇴근을 서두른다고 하였다. 아이를 위해 책을 읽어 녹음하거나 일일이 타이핑하여 파일로 저장하고 있는데, 시각장애인들에게 파일이 제공된다면 눈을 뜨게 해주는 것과 같다면서 저작권법이 개정되기를 손꼽아 기다린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IT강국이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시각장애인들에게 독이 되고 있다. 인터넷 웹 화면에 문자파일로 올려도 될 것을 장식을 위해 과도하게 많은 이미지파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문자파일은 시각장애인용 변환프로그램에 의해 시각장애인들이 접근 가능한 점자 또는 소리로 쉽게 변환될 수 있지만, 이미지파일은 장애인들에게 도로의 턱과 같은 것이다. 미국에서는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을 위해 인터넷 웹 화면에 이미지 파일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지 못하도록 아예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개정 서둘러야
4월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대통령을 비롯하여 유력 정치인들이 앞 다퉈 장애인 시설을 방문한다. 언론도 행락철 등산객과 피서 인파를 보도하듯 개인적인 노력으로 장애를 극복한 극히 드문 사례만 좇는다. 그러나 지금도 안마사 외에는 다른 진로를 찾을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많은 시각장애 학생들이 정보 접근의 높은 벽에 절망하고 있다.
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시각장애인들의 정보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한 장애인차별금지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되어 있다. 저작권법은 이미 개정돼 시행령만 마련하면 된다. 시각장애인들의 숙원 해결을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 마침 오늘은 '저작권의 날'이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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