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수경(28)씨는 2007년 5월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영화 상영 시간에 늦어 뛰고 있는 그를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뛰면서 격려해주었던 것.
"'상영관에 미리 연락해 놓았으니 좀 늦어도 관람에 별 차질이 없을 것'이라며 안심까지 시켜줬습니다. 관객을 그렇게까지 배려해 주는 영화제는 아마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박씨는 올해 전주영화제를 온전히 즐기기 위해 "잘릴 각오를 하고 1주일 휴가까지 냈다"고 했다. "전주영화제를 찾으면 마음이 편안합니다. 좋은 영화도 보고 맛난 음식도 먹고… 친척집에 놀러 가는 기분입니다."
멋과 맛의 도시 전북 전주에서 30일 제10회 전주영화제가 막을 연다. 5월 8일 일본 영화 '요시노 이발관'으로 축제를 마무리하기까지 42개국 영화 200편이 스크린에 비친다.
전주영화제는 부산국제영화제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함께 국내 3대 국제영화제로 꼽힌다. 더디게 외형을 키워가던 전주영화제는 최근 들어 성장에 가속도를 붙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산영화제처럼 대형 스타들이 레드 카펫을 밟지도 않고, 부천영화제처럼 수도권이라는 든든한 배경도 지니지 못한 이 아담한 영화제는 어떻게 영화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 작지만 강한 영화제
영화 팬들에게 전주영화제는 작지만 강한 영화제로 통한다. 축제의 열기가 뜨거운 듯하면서도 차분한 분위기가 매혹적이라는 것이다.
전주영화제의 최근 인기 상승은 수치가 말한다. 올해 개막작 '숏!숏!숏! 2009:황금시대'는 예매 개시 2분만에 매진됐다. 지난해 개막작 '입맞춤'의 61분보다 무려 59분이나 앞당겨진 것이다.
2004년 개막작 '가능한 변화들'(5시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광속 매진'이다. 관객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 2004년 4만 5,000명이던 유료 관객은 지난해 6만 5,209명으로 늘었다.
전주를 찾는 영화 마니아들은 어른 걸음으로 20분 남짓이면 왕복이 가능한 전주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서 전주영화제의 넉넉한 매력을 찾는다. 전주영화제 출품작 90% 이상은 영화의 거리에 있는 멀티플렉스 4곳에서 나눠 상영된다.
영화의 거리는 1950년대 초반 조성된 전주의 옛 번화가로 2차선 도로를 중심으로 거미줄처럼 뻗은 작은 길에 오래된 음식점과 유명 의류 브랜드 매장 등이 점점이 박혀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전주영화제를 찾았다는 대학생 홍승민(20)씨는 "다른 영화제와 달리 상영관이 밀집해 있어 영화를 몰아볼 때 한결 여유가 있다. 도시를 짬짬이 즐길 수 있고, 감독과 배우들을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시간이 비켜간 듯 바깥의 변화에 무심해 보이면서도 있을 것은 다 있는 인구 62만의 도시 자체가 지닌 매력도 영화제 분위기를 다독인다. 4년 전부터 매년 전주영화제를 찾은 심정림(27)씨는 "전주는 햇살이 가득한 도시처럼 느껴진다.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현대와 이질감이 없다. 너무 많이 발전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정도로 고즈넉한 분위기가 영화제를 즐기기에 좋다"고 말한다.
● 음식 맛은 기본, 친절은 덤
영화와 맛의 결합이 최대 매력으로 꼽히기도 한다. 직장인 장재화(24)씨는 전주영화제 하면 맛을 먼저 떠올린다. "왜 전주를 맛의 고장이라고 하는지 2007년 전주영화제를 가 보고 실감했습니다.
굳이 유명 음식점을 찾을 필요 없이 발길 닿는 곳이 맛집이에요. 특히 1,000원짜리 생과일 주스는 끝내줍니다. 먹을 것만 생각하면 1년을 기다리는 게 곤욕입니다."
직장인 정웅(27)씨도 전주영화제를 앞두고 입맛을 다신다. "김밥 체인점을 가도 전주는 맛이 다릅니다. 어느 감자탕집을 갔더니 고기 찍어 먹는 소스만 10가지가 나와 음식을 잘못 시켰나 생각했던 적도 있어요." 홍승민(20)씨도 "아무리 영화가 좋아도 맛집 순례를 빼놓아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자원봉사자들의 친절함도 전주를 다시 찾게 만드는 힘이다. 박수경씨는 "자원봉사자들이 찾아가는 서비스를 넘어서 쫓아다니는 서비스를 한다"고 치켜세웠다. 전주영화제가 운영하는 숙박 프로그램 '사랑방'을 주로 이용한다는 박씨는 "자원봉사자들이 해맑게 웃으며 짐을 방 안쪽까지 옮겨주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했다.
● 낯선 기쁨을 즐겨라
전통미 넘치는 도시가 아무리 멋들어지고, 감칠 맛 나는 음식이 혀를 사로잡는다 해도 영화제는 결국 영화가 말하기 마련. 전주영화제에는 대중들에게 이름이 드높지 못해도 세계 영화계가 대가로 여기는 감독들의 작품들이 많다.
정웅씨는 "기획전 등을 통해 의미 있는 영화들을 많이 상영한다. 관람 후 영화 관련 서적을 보다 깜짝 놀라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미래의 거장으로 성장하고 있는 국내외 유망 감독들의 영화들도 시선을 끈다. 올해 독립영화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낮술'과 '똥파리'는 지난해 전주가 발견한 수작이다. 이런 이유로 마니아들은 "전주영화제에선 편견 없이 낯선 기쁨을 즐겨라"고 조언한다.
장재화씨는 "전주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는 완성도 높은 영화들이 꼭 있다"며 유명 영화를 주로 상영하는 부산영화제와는 다른 매력으로 꼽았다. 심정림씨는 "엉성하지도 않고 느낌이 새로운 독립영화가 많아 좋다"며 "밤새도록 영화를 보는 '불면의 밤' 코너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10년째 동행 흐뭇… 1년에 영화 700편쯤 보죠"
전주국제영화제 조지훈(35) 프로그래머는 자신을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영화를 좋아했지만 영화제 관련 직업을 가질 것이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주영화제 10년은 조 프로그래머의 지난 10년간 삶과 동의어다. 조 프로그래머는 2000년 출범 때부터 전주영화제와 함께했다. 일한 기간으로 따지면 전주영화제 스태프 중 최고참이다.
기자회견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자원봉사자로 인연을 맺어 영화제 스태프의 꽃이라 할 프로그래머 자리에 올랐다. '영화제 공화국'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나올 정도로 영화제가 넘쳐 나는 국내에서도 극히 보기 드문 경우다.
조 프로그래머는 당일치기로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아 3편의 영화를 볼 정도로 영화 애호가였다는 점을 빼면 평범한 기계공학도였다. 전주영화제와 만나면서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그는 자원봉사자 시절 영화제 스태프들의 업무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해봤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갖게 됐고, 영화제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제2회 영화제가 열리기 전 그는 "스태프로 일하고 싶다"며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고 기회는 열렸다. 그는 곧 서울 프로그램팀으로 발령받았고, 미친 듯이 일을 해나갔다. "다른 직원들도 마찬가지였지만 아침에 출근해 새벽에 퇴근하는 일상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는 제3회 때 프로그래팀과 프로그래머의 가교 역할을 하는 코디네이터를 맡으며 영화제 일에 더욱 빠져들었다. 2006년엔 프로그램 팀장이 됐고, 2007년 마침내 프로그래머로 발탁됐다. "영화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일하면서 보고 듣고 말하고 글을 쓰면서 영화를 배운 거죠. 영화제를 통해 영화에 눈이 트인 셈이죠."
조 프로그래머의 일은 최대한 많은 영화를 보고 좋은 작품을 선정해 영화제에서 상영하도록 하는 것이다. "팔자 좋다"는 질시어린 비아냥을 들을 만도 하지만 세상에 쉬운 직업이 어디 있을까.
그는 "캐나다 토론토국제영화제만 4차례 방문했지만 극장과 숙소, 식당 이외에는 아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1년 동안 보는 영화 편수는 세다가 하도 지쳐 정확히 알 수 없다"고 했다.
전주영화제 작품 선정과 직접적으로 관련해 보는 영화만 얼추 400편. 1년 동안 총 관람 편수가 700편가량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영화에 신물이 날 만도 한데 그는 "아직도 물린다는 느낌은 없다"고 말했다. "연달아 본 영화 10편이 안 좋아도 11번째 영화가 좋으면 모두 용서가 돼요. 그런 기쁨 때문에 프로그래머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더욱 큰 희열의 순간은 자신이 점 찍은 영화가 상영된 뒤 관객들의 환호를 받았을 때 찾아온다. "말로 표현할 수 없죠. 관객들의 반응이 좋고 극장 개봉까지 이어지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분 좋습니다."
조 프로그래머는 전주영화제의 특징을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낯선 신인 감독들의 영화가 많습니다. 이름을 몰라도 도전의식을 가지고 접근하십시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 취향별로 골라보는 추천 명작들
예술영화 중심의 전주국제영화제는 어떤 영화를 보아야 할지 선택이 다소 어려울 수 있다. 영화제의 3명의 프로그래머들로부터 관객의 취향에 따라 놓치지 말아야 할 명작들을 추천받아 소개한다.
◆ 영화라면 죽고 못 사는 마니아에게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1963년작'분노'는 극우 저널리스트 조반니 구아레스키가 제작에 참여해 방향성을 잃고 흥행에도 실패한 영화다.
45년이 지난 2008년 주세페 베르톨루치 감독이 버려진 필름을 재구성, 시적이고 급진적인 영화로 재탄생시켰다. 정수완 수석프로그래머는 "이탈리아 거장인 파졸리니, 베르톨루치 감독의 기가 막힌 합작품을 만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강력 추천했다.
"9시간의 러닝타임을 견디며 1990년대 중국을 들여다 볼 관객, 왕 빙 감독의 열정을 이해해 줄 관객에게 추천합니다."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마니아에게 권하는 '철서구'에 대한 평이다. 중국 셴양의 공업지구 티엑시의 쇠퇴를 그린 다큐멘터리. 왕 감독은 철거 명령이 내려진 도시를 2년간 6㎜ 카메라를 들고 기록했다.
조지훈 프로그래머 역시 8시간 대작 '멜랑콜리아'를 꼽았다. 남편과 아내를 잃은 슬픔을 그린 필리핀 거장 라브 디아즈 감독의 2008년작으로, 베니스영화제 오리종티상을 받았다. 조 프로그래머는 "괴물 같은 장편을 만든 이 감독이' 디지털 삼인삼색 2009 : 어떤 방문'에서는 어떤 단편을 선보이는지 비교해 보는 것도 좋다"고 덧붙였다.
퍼즐 풀기를 즐긴다면 '쉬린'(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제격이다. 줄리엣 비노쉬와 이란의 유명 여배우 114명이 페르시아의 왕과 연인 쉬린, 또 다른 남자 파라드의 삼각관계를 다룬 연극을 본다.
그런데 영화에선 연극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무대를 보는 배우들의 얼굴을 보고 소리만 들을 수 있을 뿐이다. 유 프로그래머는 "단순한 형식 뒤에 감춰진 수수께끼를 풀며 이 영화를 즐긴다면 진정한 영화 마니아"라고 말한다.
이밖에 옛소련에 점령당한 체코슬로바키아에서 1968년 벌어진'프라하의 봄'이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됐는지를 스릴 넘치게 그린 '페라리 디노 걸'(얀 네메치 감독), 간호사 안나를 사랑하는 레온의 불안한 심리를 묘사한 폴란드 영화 '안나와의 나흘 밤'(예르지 스콜리모프스키 감독)도 놓치지 말아야 할 명감독의 작품으로 추천됐다.
◆ 가족끼리 함께 즐기려면
수채화풍의 애니메이션 '미아와 거인 미구'(자크-레미지르 감독)는 전주국제영화제가 어린이날을 기념해 무료로 상영하는 작품이다. 주인공 미아는 열대 우림 속 고급 휴양지의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아버지 페드로와 떨어져 할머니들과 살다가 혼자 아버지를 찾아 여행을 떠난다. 조 프로그래머는 "순수 수작업으로 만든 아름답고 신비로운 영상이 백미"라고 말한다.
'너 없인 살 수 없어'는 2003년 대만에서 크게 화제가 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사소한 법적 문제로 딸과 생이별을 하게 된 아버지의 처절한 싸움이 레온 다이 감독에 의해 호소력 있는 멜로드라마로 태어났다. 조 프로그래머는 "아버지와 딸의 이별을 흑백 화면에 아름답게 담아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할 것"이라고 말했다.
죽은 어머니의 꿈을 대신 이루는 아이들의 연기가 깜찍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영화 '나만의 하늘'(마도다 응카이야나 감독)은 유 프로그래머의 추천작. 삼촌을 만나기 위해 도시로 떠난 형제의 이야기다. 유 프로그래머는 "어머니 소원을 풀기 위해 거친 세상에서 고군분투하는 아이들의 진실된 연기가 가슴을 친다"고 말했다.
정 프로그래머는 "잘 길러서 잡아 먹자"며 돼지를 키우는 한 초등학교 교실의 풍경을 그린 '돼지가 있는 교실'(마에다 테츠 감독)과 모두 똑같은 바가지머리를 한 어촌 마을을 다룬 '요시노 이발관'(오기가미 나오코 감독)을 추천했다. 그는 "'돼지가 있는 교실'은 아기자기한 요소가 가득한 가족 영화로 인기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를 오랜만에 만날 수 있다"고 말했다.
◆ 잠을 잊은 그대에게_공포부터 사도매저키즘까지
지난해 시체스영화제 미드나이트 익스트림 최고영화상을 거머쥔 '악의 화신'(주제 모지카 마린스 감독)은 브라질 영화사상 가장 매력적으로 사악한 악당으로 꼽히는 '코핀 조 시리즈' 중 하나다.
살인, 섹스, 고문, 신체 절단, 수간, 토속 미신 등 호러 영화의 모든 것이 다 있다. 유 프로그래머는 "브라질 B급 영화의 괴인인 마린스 감독의 '코핀 조 시리즈' 완결편"이라고 설명했다.
유 프로그래머는 또 다나카 노보루의 '미인난무 : 고문!'을 추천했다. 여자를 고문하며 예술적 영감을 받는 화가 이토의 이야기로 70년대에는 지나치게 가학적인 성 묘사로 외면당했지만 오늘날엔 다나카의 최고작 중 하나로 꼽힌다.
조 프로그래머는 "프랑스 영화계의 배드 보이인 장 클로드 브리소 감독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느껴볼 수 있는 경험"으로 '모험'을 추천했다. 황홀경을 찾아 떠나는 한 여자의 위험한 모험을 통해 섹스와 욕망을 둘러싼 이성과 감성을 그린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 심야공연·거리무대 릴레이… 영화만큼 재밌는 행사 가득
전주국제영화제 기간에는 전주의 도심 거리도 스크린만큼이나 화려해진다. 영화제와 함께 즐길, 영화만큼이나 재미난 이벤트와 축제를 소개한다.
영화제 기간인 5월 2~5일 전주 한옥마을에서는 전주한지문화축제가 열린다. 2일 저녁 6시 개막식에선 50여명의 시립국악단이 펼치는 공연을 시작으로 화려한 '전주 국제 한지 패션쇼'가 열린다.
천이 아닌 한지로 만든 다양한 의상을 선보이는 무대로 한지문화축제의 트레이드 마크다. 3일 오후 오거리 문화광장을 출발하는 한지 퍼레이드는 객사, 풍남문, 경기전, 공예품전시관으로 길게 이어진다. 왕실에 한지를 진상하던 행렬을 재연한 행사다.
전주국제영화제는 영화의 거리에서 길놀이로 시작한다. 음악 퍼포먼스 그룹 노리단이 버려진 자전거, 자동차 휠, 페트병 등을 이용한 퍼포먼스로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 모은 뒤 토탈 아트, 극단 포즈가 거리를 행진하며 벌이는 퍼포먼스, 전통혼례 신행 길놀이 등이 이어져 분위기를 띄운다.
전주국제영화제의 밤은 주 공간인 지프 스페이스에서 펼쳐지는 야외 공연 '라이브 인 지프 스페이스'가 책임진다. 1일 '김창완 밴드'를 시작으로 비보이 경연대회인 '사이언 비보이 챔피언십 2009', 인디음악의 대표주자 '장기하와 얼굴들'의 공연 등이 매일 밤 야외 상영에 앞서 관객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할 것이다.
각종 거리공연은 영화의 거리 구석구석을 무대로 활용한다. 영화의 거리 초입에 있는 지프광장에서는 30대에서 70대에 이르는 단원들이 모인 브라스밴드 '전북드림사운드', 추억의 팝송과 영화음악을 색소폰으로 연주하는 '전주 필하모닉 색소폰 앙상블'이 공연한다. 뮤지컬과 영화음악의 하이라이트를 모은 극단 명태의 '아이 러브 무비'도 볼 수 있다.
관객 참여 이벤트로는 교보문고와 함께하는 거리도서관 '책거리'가 있다. 올해는 차양과 의자까지 준비돼 더욱 편안하게 독서에 빠질 수 있다. 전주를 자전거로 둘러보려는 사람들을 위해 자전거 무료 대여소도 차려 놓는다.
이밖에 '혼불'의 작가 최명희 문학관이 함께하는 엽서 쓰기 프로그램, 숨조형연구소 작가들의 수공예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수작거리 아트 페스티벌', 타악 비트를 직접 연주해 보고 경연도 하는 '쿵따 페스티벌'이 열릴 예정이다.
이성원기자
■ 한정식서 콩나물국밥·파순대·보리밥까지 지역명물 맛집들 즐비
'전주'란 단어를 떠올리기만 해도 입 안에 침이 고인다.
'가장 한국적인 맛과 멋의 고장'이라고 자부하는 전주 사람들에게 왜 전주 음식이 맛있는지 물었다. 누군 조선시대 전라감영이 전주에 있어서 비옥한 호남의 물산이 모두 전주로 모이다 보니 그리 됐다 했고, 또 어떤 이는 풍성한 물산 덕분에 같은 음식이라도 양념이 듬뿍 들어가 더 맛깔진 음식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일반 백반집의 5,000~6,000원짜리 식사도 상다리가 휘도록 차리고, 막걸리 한 주전자에도 십여가지 맛난 반주를 내놓는 게 전주의 음식 문화다. 전주의 밥상은 이렇게 구색을 갖춰야 밥상 대접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조화로 그런 가격에 그런 구색을 갖출 수 있게 된 걸까. "왜 싼지 정 그렇게 알고잡냐"던 음식점 주인들은 "그럼 한 번 그 곳에 가보라"며 풍남문 옆 남부시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시내 유명 음식점들은 죄다 대형 할인마트보다 싼 남부시장에서 매일 장을 봐 때마다 싱싱한 찬거리를 차려낸다고 했다. 타지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고 한 전주 음식 가격과 신선함의 비밀이 바로 남부시장에 숨어 있다고 했다.
일제강점기 때 허물어진 전주성의 4개 성문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이 남문인 풍남문이다. 서울의 숭례문 밖에 남대문시장이 형성됐듯, 이 풍남문에 바로 붙어 전주천을 끼고 형성된 시장이다. 남문 밖에 있다고 해서 '남밖장'으로도 알려진 남부시장은 조선시대부터 성시를 이루었다.
남부시장의 전성기는 1960~70년대. 호남 최대 물류 창구로 이름이 높았다. 호남 땅 쌀의 집산지로 부산 마산 등에서도 쌀을 사러 몰려들었고, 전국의 쌀 시세를 쥐락펴락 했을 정도라고 한다.
전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른 아침 남부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건물을 돌아 들어가니 시장변 전주천변에 노점이 가득찼다. 지난 밤 먹은 막걸리의 숙취를 말갛게 사라지게 하는 기대 밖의 신선한 풍경이었다. 두릅이나 취나물 한 소쿠리 싸 들고 나온 할머니나 가지런히 다듬은 미나리를 모아 놓고 손님을 부르는 아낙들이 매곡교 주변에 그야말로 성시를 이루고 있다.
매곡교 주변의 아침 좌판은 새벽 2, 3시 시작해 오전 10시에 끝난다. 낮에 잠시 쉬던 좌판은 오후 4시에 다시 시작해 밤까지 이어진다. 새벽 일찍 장이 서는 것은 진안 장수 등 먼 지역에서도 이곳에 물건을 사러 오기 때문이다.
상설시장인 건물 안쪽에 들어서면 정말 없는 게 없다. 주단집, 가구점, 옷가게 등이 구획을 짓고 길게 늘어서 있다. 시장 한복판엔 맛집이 몰려 있다. 남부시장에 장 보러 온 사람들이나 상인들의 따뜻한 밥 한 끼를 책임지는 곳이다.
전주 맛의 원천인 남부시장 안에 문을 여는 집들이라서인지 그 맛들이 만만치 않다. '남부시장식 콩나물국밥'이란 브랜드를 탄생시킨 '현대옥'도 그 중 하나다. 끼어 앉으면 10명이나 앉을 수 싶은 작은 식당이다.
일자로 된 카운터 안에서 두 아주머니가 열심히 국밥을 말아 내어 준다. 이 집의 원주인은 양옥련(69) 할머니. 현대옥을 30여년 운영하던 양 할머니는 지난해 말 무릎 수술 때문에 은퇴하고 지금은 그 맛을 잇는 후계자들이 대신 가게를 지키고 있다.
가게 벽에 크게 붙은 안내문에는 '요리 전문가를 영입해 현대옥의 맛과 비법을 구체적이고 반복적으로 전수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인지 현대옥 단골손님들은 여전히 2세대 현대옥을 찾고 있다고 한다.
이 집의 콩나물국밥은 손님이 자리에 앉아야 차려지기 시작한다. 뚝배기에 밥을 퍼 담고, 아스파라긴산이 푹 녹아있는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 덜었다 토렴을 하고는, 식성에 맞게 대파 청양고추 마늘 등 양념을 다져 국 위에 얹어 낸다. 시원하고 칼칼한 그 국물에 사람들은 '아~, 아~' 소리만 연발하며 숙취를 씻어낸다. 콩나물국밥 4,000원.
남부시장을 좋아하는 전주 젊은층들이 꼽는 또 다른 명소는 '조점례 남문피순대' 집이다. 오로지 이 피순대를 먹기 위해 남부시장을 찾는 이들도 많다. '피순대'란 조금은 섬뜩한 이름은 순대 속 선지의 함량이 다른 순대보다 많다고 해서 붙여졌다. 그래서인지 순대 속이 부드러워 입 안에서 아이스크림처럼 녹는다.
피순대 뿐 아니라 이곳에서 내는 눌린 머릿고기나 내장 등도 맛이 특별하다. 국밥 4,000~5,500원, 피순대ㆍ모둠고기ㆍ눌린 머릿고기 등은 작은 접시 7,000원, 큰 접시는 1만1,000원이다. (063)232-5006
시장 건물 2층의 '순자씨 밥줘'란 보리밥집도 남부시장의 명물이다. 이 기발한 이름은 주인 최순자(72)씨의 큰 딸이 지어줬다고 한다. 이 집에선 손님과 주인 사이 옥신각신 다툼이 자주 일어난다.
3,000원 하는 보리밥 값 때문이다. "이래 갖고 뭐 남느냐"며 웃돈을 얹어 주려는 손님들과 "남는 게 있으니 장사하제"라며 한사코 거절하는 주인의 정겨운 분쟁이다. 혼자서 가게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식사는 뷔페로 진행된다.
어떻게 먹는 거냐 물었더니 양푼에 설설 김이 나는 보리밥을 크게 뜨고는 열두가지 반찬 통에서 한 움큼씩 골고루 찬을 떠서 담아 고추장과 강된장을 얹어 내준다. 따로 나오는 시래기국과 동태찌개를 곁들여 쓱쓱 비벼 먹는 보리밥. 주인의 따뜻한 정만큼이나 구수하고 맛있다. (063)282-2168
전주=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전주, 한옥마을·영화거리 '뚜벅이 천국'
전주는 뚜벅이 여행객에겐 최고의 여행지다. 전통이 살아 있는 한옥마을과 동문사거리, 영화제가 집중적으로 열리는 영화의 거리, 예쁘게 단장된 걷고 싶은 거리 등이 한데 붙어 있다. 전주의 멋과 맛이 죄다 이 곳에 모여 있어 한나절 천천히 걸으며 전주의 깊은 향기에 젖어들기에 좋다.
견훤이 세운 후백제의 수도였고 조선 왕조 전주 이씨의 발상지인 전주를 지금도 전통의 도시로 느끼게 하는 가장 큰 힘은 '전주 한옥마을'이다. 완산구 풍남동 교동 일대, 800여 채의 한옥이 보존된 전국에서 가장 큰 한옥마을이다.
처마의 곡선이 물결 치듯 흐르는 한옥마을에는 태조의 초상화를 모신 경기전, 한국 천주교의 순교 1번지로 불리는 전동성당, 호남에서 제일 컸다는 전주향교 등 볼거리가 풍부하다.
이성계가 황산벌 전투에서 승리한 후 축하연을 벌였다는 오목대, 전주성의 성문 중 유일하게 남은 풍남문, 민물고기 쉬리가 뛰노는 1급수 도심 하천인 전주천변도 가까이 있어 거닐어볼 만하다.
한옥마을의 중심대로는 크게 경기전길과 은행길이 있다. 경기전길은 오목대와 경기전 전동성당 등을 지난다. 이 길을 가로지르는 은행길엔 지난해 조성된 작은 실개천이 이어져 마을의 운치를 더한다.
은행길에선 주말이면 공예품 벼룩시장이 열린다. 한옥마을 내 공방들이 내놓은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구경할 수 있다. 김치전 부각 떡 등 간식을 즐길 수 있고, 전통 공연도 함께 펼쳐져 신나는 난장을 이룬다.
한옥마을을 구석구석 거닐다 다리를 쉬고 싶은 뚜벅이들을 위해 세련되고 쾌적한 카페와 전통찻집을 소개한다. 은행길 작은 골목에 있는 '교동다원'은 한옥마을에서 제일 처음 생긴 전통찻집이다.
작은 한옥의 아늑함이 그대로 살아 있다. 마당을 휘감아 퍼지는 풍경 소리가 일품이다. 대표 메뉴는 찻잎을 발효한 황차. 유기농 밀과자를 곁들여 마시면 좋다.
은행길과 경기전길이 만나는 곳에 있는 카페 '모심'도 편안히 커피 한 잔 즐길 수 있는 곳. 2층에 올라서면 한옥마을의 기와 지붕들이 잇고 있는 넘실거리는 곡선을 느낄 수 있다.
은행로 북쪽 끝자락에서 한 모퉁이 왼쪽으로 돌아서면 '공간 봄'이란 카페가 있다. 일본식 가옥을 리모델링한 곳인데, 마치 화원에 들어선 듯 싱그러움이 물씬하다. 카라멜 마키아토의 맛이 좋다. 작은 과일과 빵이 나오는 '토스트와 친구들'도 인기 메뉴다.
경기전 뒷길의 '더 스토리'도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예쁜 카페다. 2,500원으로 에스프레소와 아메리카노를 즐길 수 있고 직접 반죽해서 굽는 쿠키나 케이크를 맛볼 수 있다.
전주=글ㆍ사진 이성원기자
■ 전주 막걸리·'가맥'… "주당들 신났다"
◆ 막걸리
전주의 지체 높은 어른들이나 돈 없는 대학생들이나 멀리서 온 손님을 접대하기 위해 찾는 곳은 똑같이 허름한 막걸리집이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안주를 내는 '전주 막걸리집'은 이미 전국에 유명해졌다. 전주 시내에 막걸리집은 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막걸리 한 주전자에 1만2,000원을 내면 20여 가지 맛난 안주가 테이블이 모자라도록 펼쳐진다. 한 접시 한 접시가 서울의 여느 술집에선 1만원 이상 받을 만한 것들이다.
홍합, 꼬막, 새우 튀김, 병어 조림, 편육, 두부 김치, 조기찌개, 데친 문어, 꽁치 구이, 낚지 볶음 등 세기도 벅찬 산해진미에 외지 손님들은 "저녁을 괜히 먹고 왔다"며 한숨을 쉬고, "전주는 과식과 포만의 도시"라는 복에 겨운 푸념도 한다.
그렇다면 왜 전주에서 막걸리가 유명해진 걸까. 한옥마을 한옥생활체험관의 김병수 관장은 막걸리집의 푸짐한 안주는 백반집 상차림의 연장선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한 끼라도, 대포 한 잔의 안주라도 구색을 갖춰 먹어야 한다는 것이 전주 사람들의 자존심이라는 것이다.
전주 막걸리집은 최근에 등장한 새로운 유행이 아니다. 전주와 막걸리의 인연은 오래됐고 한 번도 끊긴 적이 없다고 한다.
김 관장은 "어릴 적 어머니가 술 드시는 아버지를 찾아 오라고 해서 가본 대폿집에서 어른들이 설탕을 타서 건네 줬던 막걸리로 처음 술맛을 배웠다"고 했다. 다른 지역과 달리 대학가에도 유독 막걸리집이 많은 건 전주와 막걸리의 깊은 인연을 보여준다.
구도심의 경원동 대폿집들이 막걸리집의 원형이라고 한다. 단골 손님 상에 안주가 식으면 아무 말 없이 찌개 하나 새로 끓여 내주던 술집 주인들의 따뜻한 정이 흐르던 곳이다.
이후 막걸리집은 삼천동 서신동 평화동 등 신흥 주택가로 번져 가기 시작했다. 신시가지의 상가 분양이 잘 되지 않아 비어 있을 때 임대료가 싼 이들 점포에 대폿집들이 하나 둘 들어건 것이다.
주택가 주민들이 해거름에 술 생각이 간절할 때 편한 추리닝에 슬리퍼 차림으로 가기엔 막걸리집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인기를 얻어가며 지금의 막걸리촌들이 생겨났다. 처음엔 집집마다 안주가 달랐지만 '벤치마킹'의 전쟁을 치르면서 안주 종류와 맛이 비슷해졌다.
◆ 가맥
막걸리로 얼큰해진 전주의 취객들은 2차로 전주만의 또다른 술집 '가맥'을 찾는다. 풀어 쓰면 가게맥주다. 동네 슈퍼에서 파는 맥주와 안주 가격으로 술을 마시는 독특한 술 문화다. 호주머니가 얇은 직장인들이 작은 가게에 하나 둘 모여 값싼 맥주를 마시면서 시작됐다.
전주시청 노송광장을 지나 출판사와 인쇄소가 줄지어 있는 출판거리에 가맥이 모여 있다. 가맥의 원조로 꼽히는 곳은 시청 인근의 '전일슈퍼'다. 슈퍼의 맥을 잇기 위해 가게 한 쪽에 과자나 음료수 등의 판매대가 작게 남아 있지만 이 집의 주력 상품은 맥주다. 맥주가 얼마나 많이 팔리는지 맥주회사에서 따로 인사를 할 정도라고 한다.
작은 점포 3개를 뜯은 1,500㎡ 규모의 실내는 30여 개의 낡은 탁자가 놓여 있을 뿐 인테리어에 신경 쓴 흔적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같은 병맥주를 파는데도 이 허름한 전일슈퍼가 유명한 건 이 집에서 내는 간장소스 때문이다.
전일슈퍼의 안주는 주인이 직접 연탄 화덕에 구워내는 갑오징어와 황태 그리고 계란말이다. 이들 안주를 찍어 먹는 간장소스의 맛이 아주 묘하다. 달착지근하며 짭쪼롬한 장이 중독성이 강하다. 잘게 썬 청양고추를 듬뿍 섞으면 맥주 넘기는 속도는 더욱 빨라진다. 맥주는 1병에 2,000원. 안주는 1만2,000~1만5,000원. (063)284-0793
최근 도청 주변과 서신동 일대에도 가볼 만한 가맥들이 많이 생겼다.
전주=글ㆍ사진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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