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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나물반찬·딸기 디저트… 식탁에 핀 봄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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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은의 名品 먹거리] 나물반찬·딸기 디저트… 식탁에 핀 봄봄봄!

입력
2009.04.26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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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딸기

오독오독 소리 내며 먹어야 제 맛인 과일이 두 가지 있다. 키위와 딸기. 둘 다 비타민 C가 담뿍 담긴 '씨' 씹히는 소리가 재미난 먹거리다. 그 중 딸기는 봄이 완전히 왔음을 알리는 전령사다.

예전에는 '한 겨울에 딸기가 드시고 싶다는 부모님을 위해 눈밭을 마다지 않고 구해왔다더라'는 효자, 효녀들의 이야기가 회자될 만큼, 겨울에 딸기 먹기란 기적같은 일이었다.

하우스 재배가 발달한 지금, 울 엄마가 한 겨울에 딸기를 찾아도 나는 걱정 없으니 효도랄 것도 없는 효도마저 옛날보다는 쉬워진 셈이다. 일부러 봄을 기다리지 않아도 사철 내내 마트에 가면 딸기가 있으니. 하지만 '한봄(한여름이나 한겨울과 같이 봄의 가장 중간을 의미)'에 먹는 딸기 맛은 특별한 매력이 있다.

일단 다른 철보다는 가격이 내려간다. 동네 슈퍼에서 한 팩에 9,000원~1만2,000원 하던 겨울딸기에 비하면 봉지에 5,000원하는 봄 딸기가 고맙다. 시장에서 5,000원어치를 사면 동네 슈퍼보다 양이 늘어난다.

두 번째로는 맛이 월등히 좋다. 논산 등지에 가면 한창 딸기 따기 체험을 할 수 있는데, 딸기를 따서 그 자리에서 먹는 맛은 안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할 정도로 달다. 제철 과일답게, 일부러 키운 작물에 비해 크기가 작으면서 모양과 색이 자연스럽다.

시장이나 마트에 영업 종료 30분 전쯤 가면, 팔다 남은 무른 딸기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데 물러진 딸기는 쨈으로 만들어 먹으면 된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이 그칠 날 없는 요즘, 정제 설탕 대신 올리고당이나 꿀을 넣어 만드는 수제 쨈은 아이들 간식이나 가족들 아침 식사용으로 두루두루 쓸 만하다.

최근 논산에서는 딸기를 이용한 와인까지 개발했는데, 빛도 곱고 맛도 고운 100% 과일주다. 딸기 5,000원어치를 한 입에 홀랑 먹기 아깝다면, 딸기술을 담가보자. 딸기술은 피로를 풀어주고 피부 미용에 좋다. 살균한 유리병에 딸기와 막소주를 함께 담아 한 달쯤 숙성시킨다.

막술이 강하다 싶으면 그냥 20도 내외의 가정용 소주를 부어도 딸기즙이 금방 우러나서 마실 만하다. 본격적으로 딸기와인을 만들어보고 싶다면 딸기를 으깨고, 설탕을 더 넣은 다음 이스트를 첨가해 발효시키고 하는 과정이 추가된다. 딸기 농가 중에 와인 만들기 체험이 가능한 곳도 있으니 검색해보자.

■ 푸릇푸릇한 것들

봄을 알리는 진달래나 딸기는 발그레한 빛깔로 마음을 흔들지만, 보기만 해도 건강이 넘치는 푸릇함으로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먹을거리들도 있다. 봄동, 쑥, 달래, 미나리같은 푸릇한 것들은 보기만 해도 눈이 시원하고, 먹으면 더 좋다. 까칠해진 햇살에 입맛이 덜 나는 날, 동네 시장에 나가 보면 푸릇한 먹을거리를 다 만날 수 있다.

할머님들이 차려 놓으신 광주리나 바가지에 금방 뜯은 돌나물, 봄동, 쑥, 냉이, 달래가 가득하다. 운이 좋아 보리싹이라도 만나면 당장 손에 넣어 된장국을 끓여 먹자. 조리법이야 거기서 거기겠지만, 봉지에 담고 계신 할머님의 레시피를 여쭈면 하나라도 배울 점이 있게 마련이다.

"달래는 간장 간이 맞아. 여기에 깨소금이랑 설탕을 조금 넣고 마늘은 절대 넣지마."

"봄동은 지져 먹어도 맛있는데 슬쩍 데쳐서 쭉쭉 찢어 양념을 해도 맛있어. 밥도 비벼 먹고."

"쑥은 찹쌀풀 묻혀서 말려도 좋아. 잘 말려서 기름에 튀겨 먹지."

두세 분 모여 앉아 계신 할머님들은 손주 며느리 가르치듯 한 마디씩 거드신다.

완두콩 한 봉지, 달래 한 바구니, 돌나물 한 바구니에 딸기 5,000원어치 사서 주말을 준비한다. 딸기는 반은 쨈으로, 반은 술로 만들 것이고 냉이는 간장, 돌나물은 고추장을 조금만 넣어 조물조물 무칠 거다.

예전부터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는데, 바로 푸릇한 콩으로 흰 밥 위에 하트를 그리는 것. 닭살 돋는 순정 만화나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유치찬란한 일이지만. 하지만 봄이 왔으니까, 올 봄은 이렇게 지나버릴 것이니까, 지나버리면 다시 오지 않으니까 한 번 해보련다.

10,11월에 파종해서 4월부터 수확하는 완두콩은 피부에 좋다. 딸기와 더불어 봄철 피부를 위해 먹어 두면 좋은 식재료다. 흰 밥 지어 넓은 그릇에 펴 담고, 소금을 넣은 끓는 물에 살짝 삶아 찬물로 헹궈 푸른 색이 빠지지 않게 익힌 파란 콩으로 하트를 그려 보자.

봄 냄새 물씬 나는 냉이랑 돌나물 반찬에 지난 달 잔뜩 캐다가 쪄서 얼린 쑥으로 끓인 된장국을 곁들이고. 친정 엄마가 주신 봄 죽순은 도톰하게 썰어 굽고, 고소한 구운 소금에 톡 찍어 먹어야지. 콩으로 그린 하트 때문에 남편의 놀림을 받더라도, 내 마음은 봄처녀처럼 말랑해 질 것 같다.

음식 에세이 <밥 시>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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