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국민성은 그 나라의 제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기사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예를 들어, 서부 시애틀에서 동남부 마이애미 비치까지 비행기로 6시간이 걸리는 방대한 영토에 인구가 3억에 가까운데다 수백 여 인종이 살고, 종교만도 수백 개에 달하는 미 합중국에 사는 사람들이 지금처럼 조직적으로 높은 만족감을 갖고 사는 것은 바로 제도 때문이다.
전세계에서 매일 수천 여명이 자기를 낳아준 조국을 버리고 미국 땅으로 몰려오는 이유는 바로 제도가 그들의 조국보다 너 낫기 때문이다.
내가 캘리포니아 주 다이아몬드시 시장으로 있을 때 일이다. 한국계가 시장이 되었다는 소문에 한국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한번은 고등학교 교장이 내게 조용히 의논할 일이 있다 기에 교장실에 갔었다.
그의 얘기는 한국 학생 두서너 명이 몰려다니는데 이들은 모두 고급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며, 사치스런 아파트에 살면서 하루가 멀다고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파티를 한다는 것이었다.
부유층인 이들의 부모들은 자식들 거주지 인근의 친지들에게 매달 거액을 송금하면서 자식들 보호를 맡겼다. 하지만 친지들 역시 바쁜 생활로 인해 이들을 방치 상태로 놔두고 있어 같은 한국인인 내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음악을 크게 틀면 옆집에서 경찰을 부르고, 경찰은 곧 달려와서 당장 음악을 줄이도록 명령한다. 두 번째 같은 일이 생기면 경찰은 여지없이 이들에게 수갑을 채우고 경찰서로 데려가 부모나 보증인이 벌금을 낸 뒤에야 석방한다.
하지만 세 번째 같은 일이 생기면 상황은 아주 심각해진다. 캘리포니아 주의 삼진아웃제 (Three strikes, you're out. 세번째 범죄는 무조건 감옥행) 때문에 감옥형이 부과되기 때문이다. 삼진아웃제는 조금도 용서가 없는 제도다.
사실 처음 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학생들 뿐 아니라 부모들이 겪는 고생도 말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미국의 어떤 면이 좋으냐 물으면 한결같이 교육제도를 첫번째 이유로 꼽는다. 조기유학은 사실 20년 전부터 시작됐다.
주로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이아몬드바 고등학교는 LA카운티에서도 성적이 좋은 학교로 알려져 있었고, 한국인 부모들은 좋은 교육구를 찾아 집을 구입하는 경향이 높았다.
한국에서 이민자들이 몰려오는 두 번째 이유는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 때문이다. 평범한 사람도 열심히 일하면 누구나 성공의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에 미국을 흔히 기회의 땅으로 부른다. 빌 게이츠가 자기 집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해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미국 사회가 그런 기회를 충분히 제공했기 때문이다.
이민자들의 말을 빌리면, 한국은 재벌을 끼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고, 또 정치권에 줄을 대지 않으면 감옥에 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재벌이 아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주가를 조작해서 하루아침에 백만장자로 만들어 놓았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놀랬다.
단 한 푼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고 자기 자식들은 아버지의 명성을 바탕으로 바닥부터 시작해도 성공할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모든 재산을 자선 사업에 바친 빌 게이츠와는 너무도 대조적이라는 말이다.
또한 고위 정치인들이 검은 돈을 삼키고 검찰에 불려 다니는 모습도 안타깝다.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은 감옥살이를 했고,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아들들이 감옥에 들락날락했고, 청렴결백 하다던 노무현 대통령마저 그 형이 감옥에 들어가 있고 아들, 조카, 부인마저 검찰에 불려 다니니 참으로 안타깝다. 미국 역사 250년에 전직 대통령이나 자식이 돈 문제로 감옥에 갔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주가를 조작하고 검은 돈을 삼키는 행위를 대한민국에서 영영 없애는 길은 없을까. 나는 인정사정 없는 미국의 제도를 한국사회에 그대로 옮기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검은 돈 거래에 대해서만은 미국 같이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믿는다.
미국의 정치인 중 돈 문제로 감옥살이를 한 사례로 트래피칸 의원과 커닝햄 의원이 있다. 한때 민주, 공화당의 스타였던 이들은 각각 8년형을 선고 받았지만 만일 한국이었다면 사회에 공헌한 업적을 참작해 집행유예 정도로 끝이 났을지 모른다.
미국에서는 지위가 높을수록 사회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면서 보통 시민들보다 더 무거운 판결을 내린다. 뿐만 아니라 형이 확정되면 영영 피선거권을 잃게 되고 전직 국회의원 자격도 잃어 연금도 끊기고 평생 범죄자의 낙인이 찍혀 가족에게도 막대한 악영향을 준다.
비리 공무원이나 정치인들에 대한 미국 사회의 가혹한 처벌은 아동 성범죄자의 사례와 다르지 않다. 아동 성범죄자는 징역을 살고 나와도 동네 이곳 저곳에 '아동 성범죄자가 이 동네?사니 부모들은 조심하라'는 포스터가 나붙어 결국 창피해서 이사를 가게 된다. 하지만 이사간 지역에서도 범죄사실이 결국 알려져 다른 나라로 몰래 나가서 살아야 하는 굴욕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미국과 한국의 비리 사건에서 공통점은 혐의자들이 돈을 먹고도 끝끝내 딱 잡아떼는 것이다. 미국에는 'Deny, deny, deny!' 라는 말이 있다. 검찰이 증거를 코앞에 갖다 대도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 것이다. 한가지 조심할 것은 거짓말 하는 경우다. 거짓말을 하면 법정모독죄로 5년형이 10년형으로 늘어난다.
미국은 인정사정 없는 사법제도가 아니었다면 나라를 통치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죄를 지었으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한치의 양보도 없는 사법제도다. 물론 대한민국 같은 단일민족 사회에서 미국의 제도를 그대로 베끼는 것은 부적절하다.
하지만 명절을 맞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자그마치 100만 명을 사면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미국인들도 깜짝 놀랬다. 더욱이 고위직에 있던 사람부터 사회적 공헌을 이유로 사면하는 것을 보고 단 7명을 사면했다고 심한 공격을 받는 미국 사면제도가 생각이 난다.
최근 미국에서도 일부 지역에서 감옥이 꽉 차 모범수들을 대상으로 사면하는 사례를 보았다. 하지만 명절 때면 의례 대통령의 사면을 기다리는 고위직 수감자들을 볼 때 한국의 이런 제도는 잘못된 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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