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정복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딸을 복종시키는 일은 실패했다"는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의 유명한 말을 낳게 한 주인공인 그의 장녀 에다 치아노(1910~1995년)가 '금지된 사랑'을 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져 화제를 낳고 있다.
유력지 코리에레 델라 세라와 로이터통신 인터넷판은 21일 무솔리니의 딸답게 독립심 강하고 활달한 여장부로 알려진 에다 치아노가 아버지의 파시스트 독재체제를 무너뜨리게 위해 투쟁한 공산 유격대원과 이루지 못한 연애를 했다고 소개했다.
이들 언론은 최근 에다 치아노의 러브레터와 사진들이 발견되면서 그가 아버지를 생각하면 도저히 해서는 안 되는 애정행각을 벌인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에다 치아노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반파시스트 정부에 의해 남부 시칠리아 근처의 작은 섬 리파리에 일시 유배됐는데 여기에서 한 남성을 만나게 됐다.
그 남성은 리파리섬에서 빨치산 대장으로 활동한 공산당 지부장 레오니다 본조르노. 당시 본조르노는 에다 치아노의 모습을 보고 "날개가 찢겨지고 다친 조그만 제비 같았다"고 묘사할 정도로 연민을 느꼈다고 술회했다.
그는 에다 치아노가 1946년 사면을 받고 풀려나 로마로 간 뒤에도 열렬한 연애편지를 주고 받았다. 에다 치아노는 "하늘이 내려주신 행운을 저버릴 수는 없다"며 본조르노에게 로마에 와서 혼례를 올리고 함께 살자고 애원했다.
그러나 사랑은 결실을 보지 못했다. 특히 본조르노는 빨치산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이상과 타도 대상인 무솔리니의 딸 가운데 어떤 것을 택할지를 놓고 심적 갈등을 겪었다. 한때 본조르노는 에다 치아노의 좋지 않는 건강을 내세워 둘의 사랑을 정당화하려 했지만 정치적 벽을 넘지는 못했다.
결국 본조르노는 시칠리아 메시나의 호텔에서 에다 치아노를 마지막으로 만난 뒤 리파리로 돌아가 바로 다른 여자와 혼례를 올리면서 두 사람은 완전히 갈라섰다.
두 사람의 관계는 얼마 전 본조르노의 아들이 집에서 에다 치아노가 보낸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 영어로 쓴 러브레터 36통을 우연히 찾으면서 드러났다. 편지들은 1945년 9월에서 1947년 4월 사이에 쓰여졌다.
사실 에다 치아노는 한번 결혼한바 있다. 그의 전 남편 갈레아조 치아노는 골수 파시스트로 장인 무솔리니의 후광으로 외무장관까지 벼락 출세한 인물. 그러나 그는 무솔리니에 의해 1943년 7월 의자에 묶여 사살돼 에다에게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겼다.
독재자의 딸로서 파란만장을 삶을 살아온 에다 치아노는 생전에 아버지의 독재체제에 부역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으며 95년 로마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다.
한성숙 기자 hansk@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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