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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교육열(敎育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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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교육열(敎育熱)

입력
2009.04.22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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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가난으로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페스탈로치의 따뜻한 인간교육. 심훈의 <상록수> 에서 주인공 채영신과 박동혁의 헌신적인 농촌계몽교육. 이 두 예는 교육자의 자기희생적이고 숭고한 교육열을 대표한다. 사도(師道)의 교육적 열정은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반면에 독일의 철학자 피히테가 <독일 국민에 고함> 에서 보여주었던 국가의 교육적 열정은 양면적이다. 공교육을 통한 국민교육의 체제 확립은 보편 일반교육을 뿌리 내리게 했지만, 국민의 자유로운 사고를 가로막는 획일적인 국가통제 교육의 폐단도 낳았다.

학부모 열정 긍정적 활용을

교육자의 교육열과 국가에 의한 국민교육의 열망 이외에, 학부모의 뜨거운 자녀교육열이 있다. 이는 우리의 교육현실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한국 학부모의 자녀 교육열은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교육연구 분야에서 독자적인 학술개념으로까지 다뤄지고 있을 정도이다.

한국의 교육열에 대해 전 이스라엘 대사 아셀 나임은, "한국 사회의 교육열과 어머니들의 헌신적인 태도를 개선하여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 속에는, 학부모의 교육열이 개선의 여지가 있다는 비판적 지적과 함께 한국 학부모의 열정적인 자녀교육열을 다른 방향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충고가 들어 있다.

교육정책 당국자나 일부 교육학자들은 후자의 긍정적인 의미에 적지 않은 관심을 갖고 있다. 부모의 뜨거운 자녀교육열을 국가 발전의 에너지로 적극 활용하자는 주장은 그럴 듯해 보인다. 국가 내에 축적된 에너지를 대승적으로 전환하면서 그 정책적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학부모의 자녀교육열을 비판적인 관점만이 아니라 사회공학적이며 실증적인 관점에서만 바라본다면, 문제를 일으키는 근원을 해부하는 데 실패하고 만다.

분명히 부모의 자녀 교육열은 이중적이다. 말하자면 '헌신', '자기희생', '교육입국(立國)에의 기여' 등과 같이 도덕적이고 사회공동체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지만, 부모의 과도하고 이기적인 자녀 교육관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도 갖고 있다. 과도한 학부모의 자녀교육열이 초래하는 사회문제를 열거하기 어렵지 않다. 윤리적이고 교육적인 의미에서 문제점을 분명히 지적할 필요가 있다.

한국인의 자녀교육열은 학교교육뿐만 아니라 교육 자체를 도구로 간주하는 왜곡된 교육행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 여기서 교육은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고 자아를 계발하는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적 신분유지 및 상승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 결과 겉으론 학교에서 전인교육의 정당성에 공감하지만, 실은 입시에서 자녀의 성공에만 기대는 학부모의 자기모순적 모습이 등장한다.

또한 사교육 광풍 속에서 학부모들 사이의 경쟁적 행동은 대체로 자신만의 확고한 교육관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주변 학부모의 사교육적 처방을 무작정 따라가는 측면이 강하다. 미국 사회학자 리즈만(D. Riesman)이 <고독한 군중> 에서 현대인의 행동유형 중의 하나로 제시한 바 있는 '타인지향성(Other-direction)'이 이와 동일하다.

안정적인 자기 내면성을 상실한 대중의 통속적인 행동은 '남 따라 하기 교육'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적지 않은 우리 학부모들은 자녀교육에 몰두하면서도 '이게 원래 아니었는데…' 하는 회한과 자괴감에 수없이 빠진다.

'남 따라 하기 교육' 반성부터

한국인의 교육열을 심지어 유전적인 요인으로 치부해 버리면서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을 포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 많은 사회사적 연구들은 부모의 자녀사랑이나 가족의 존재 형식이 사회ㆍ역사적 산물임을 밝히고 있다. 자녀에 대한 배려 및 교육적 행동 방식은 사회와 시대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어 왔다는 말이다.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상대화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엔 쉽지 않은 자기 성찰의 과정이 요구된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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