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통화한 한나라당 A의원이 대뜸 던진 말이다. "며칠 뒤 교육과학기술부의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보고가 있을 텐데 사학(私學) 문제로 시끄러울 것 같아요. 일부 의원들은 벼르고 있습디다.…" 여당 의원이 전하는 '분위기'가 궁금해 민주당 B의원에게 전화했다. "교과부가 사립대 총장 인사에 개입한 걸 따지지 않겠어요? 볼만 할 겁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여ㆍ야당 의원의 예견은 적중했다. 화살은 교과부 대학 라인을 총괄하는 1급 관료 E실장에게 겨눠졌다. 그가 경기대 총장 선거에 발을 들여놓았다는 이유에서였다. 노무현 정부 시절 선임된 경기대 총장을 만나 차기 총장 선거 불출마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일부 의원은 격한 표현을 써가면서 E실장을 거세게 몰아붙였다.
정치권이 교과부의 사립대 총장 선거 개입을 추궁한 것은 당연했다. 교수와 직원, 학생 등 학내 구성원에게 맡겨둬야 할 사립대 총장 선거에 정부가 끼어들 자격도, 명분도 없다는 것은 진리와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게 문제다. 교과부를 '방관자'로 머물게 할 만큼 주위 여건이 한가하지 않다.
사실 총장 선거 등 교과부의 사학 인사 관여는 정권이 바뀔때마다 되풀이 돼 온 측면이 강하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노무현 정부때는 진보 진영 인사들이 이른바 분규 사학들을 몽땅 접수했다. 임시이사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직ㆍ간접적으로 인연이 있는 인사들로 메워졌다. E실장을 코너에 몰아넣은 경기대가 그랬고, 세종대 상지대 등 여러 대학도 같은 범주였다. 임기가 끝난 사립대 총장 자리는 친노(親盧) 인사들이 호시탐탐 노렸다.
그 과정에서 역할 분담이 존재했다는 설은 정설처럼 굳어져 있다. '작전'은 청와대에 짰고, '실행'은 교과부(옛 교육인적자원부)가 맡았다.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교육부가 청와대 386에 놀아나 분규가 있는 사립대 이사 인선을 주무른다"고 비판했지만, 공허한 메아리일 따름 이었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명박 정부에 건 사학의 기대는 자못 컸다. 최대 관심사가 사학의 자율성이었다. 여전히 논란거리인 사립학교법은 제쳐두더라도, 사학 무대에서 노무현 정부때의 재연(再演)은 정말 원치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했던 가. 사학의 염원은 무참히 짓밟혔다. E실장에 이어 역시 교육관료 출신인 K 청와대 교육비서관이 세종대 설립자 측과 접촉해 특정 인물을 차기 총장에 앉혔으면 한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알려져 또 말썽을 빚었다.
정작 교과부 관료들은 "힘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보기에도 딱하다. 관료 차원을 넘어 '윗선'에서 지시하는 대로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지난 정권에서도 목도(目睹)된 일이어서 새삼 스러운 일도 아니다. E실장, K비서관도 이런 점에서는 '무죄'일 수 있다.
교과부가 타의에 의한 것이라고 '강변'하는 사학과의 악연(惡緣)을 끊는 방법은 단 한가지다. 교과부 실세 장ㆍ차관이 총대를 메는 것이다. 안병만 장관과 이주호 1차관이 "사학 간섭을 일절 하지 않겠다"며 일종의 선언을 하면 된다. 정권을 쥔 입장에서는 '공신(功臣)'들을 사학 등 교육계 곳곳에 포진시키려는 욕망이 강하겠지만, 실세 장.차관의 의지까지 꺾을 수야 있겠는가. 이게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숙명을 떠안고 있는 교과부를 살리는 길이다.
김진각 사회부 차장 kimj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