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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탈크',' 탤크', 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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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탈크',' 탤크', 활석

입력
2009.04.22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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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 일본에서 처음으로 소 혀 구이를 맛보았다. 수육에 '우설'을 섞어 내주는 유명한 설렁탕 집이 서울 종로에 있었지만, 구이로 내주는 식당은 보지 못했다. 그런데 그 이름이 이상했다. '규탄야키', 또는 '구이'를 뜻하는 '야키(燒)'를 뗀 '규탄'이었다. 그 소금구이를 뜻하는 '탄시오'는 '규탄'+'시오야키'를 일본식으로 줄인 말이다. 그러니 '규탄'은 '소 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본어로 혀는 '시타'이고, 한자 설(舌)을 소리로 읽어도 '제쓰'일 뿐이다. 도저히 '탄'으로 혀를 가리킬 방법이 없었다.

■의문은 우연히 풀렸다. 본격적인 한류 열풍에 앞서 1990년대 말 일본에 한국관광 붐이 일었고, 일본의 민간방송은 한국 현지 취재 경쟁에 열을 올렸다. 그 가운데 일본의 대표적 간편식인 '돔부리'(덮밥)가 음식이 아니라 그런 음식을 담는 그릇을 가리키던 한국 말에서 나왔음을 전한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리포터가 인사동 거리에서 큼직한 사발을 들고 그 옛이름이 국사발이라는 뜻의 '탕발(湯鉢)'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한 가게 주인이 한자로 씌어진 '탕발'을 '탕본'이라고 읽었고, 리포터는 신이 나서 '돔부리'가 '탕본'에서 나왔다고 떠들었다.

■요즘도 이러니 해방 직후 어느 재일동포가 '설(舌)'을 '탄(呑)'이라고 읽었다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걸 '규(牛)'에 붙여 '규탄'이라고 읽은 게 퍼져나갔고, 일본인들은 아예 외래어로 여겼을 가능성이 크다. 말의 와전은 일반인의 전유물도 아니다. 전문가 사이의 오해와 와전을 보여주는 좋은 예가 유행성 출혈열 바이러스인 '한탄(Hantan)'이다. 발견자인 이호왕ㆍ이평우 교수가 '한탄강'에서 따서 쓴 이름인데도 'Hanta'라고 쓴 외국 글이 더러 있다. 'Hantan'의 '–(a)n'을 영어의 형용사형 접미사로 여긴 결과다.

■말이 문화권을 넘으며 낳은 소극이다. 그나마 '규탄'이나 '탕본'은 무해하다. 일본에서 '규탄'이라면 누구나 '소 혀'라고 여기고, '탕본'이건 '탕발'이건 이미 '돔부리'로 변한 지 오래다. 그런데 발암물질인 석면이 포함된 활석이 의약품이나 화장품 원료로 쓰인 것과 관련,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탈크', 또는 '탤크'는 혼란스럽다. 분필 대신 활석으로 담벼락이나 길바닥에 낙서를 해본 세대는 물론, 청소년도 활석이라면 금세 안다. 굳이 외국어로 쓰겠다고, 표기원칙이니 언어현실이니 하고 다투는 꼴이 우스꽝스럽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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