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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전경련 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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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전경련 회관

입력
2009.04.2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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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봐 임자들, 건물을 20층으로 높여 짓고 국회 옥상(지상 12층)에 설치된 수도방위사령부 방공포를 옮겨오면 적기를 격추하는 데도 유리하잖아? 수방사도 여의도 상공을 수호하는 데 더 좋은 20층 건물을 짓는 데 반대할 이유가 없다구…" 1970년대 중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던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은 회관 신축 계획을 보고하러 온 전경련 사무국 직원들을 나무랐다. 사무국은 당시 여의도에는 국회의사당보다 높은 건물은 허가가 나지 않는 점을 들어 12층으로 건립하는 방안을 보고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전경련 건물이 20층으로 올라간 데는 정 전 회장 특유의 "해 보기는 했어?"라는 역발상과 불도저 추진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번뜩이는 수완이 아니었으면 12층에 그쳤을 것이다. 1977년 7월 첫 삽을 뜬 후 79년 11월 16일 낙성식을 가진 사옥은 당시 의사당 외에는 변변한 건물이 없던 여의도에서 재벌 본산을 상징하는 고층 건물로 위용을 떨쳤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創造(창조) 協同(협동) 繁榮(번영) 1979년 11월 16일 준공'이라는 휘호를 미리 써 줬지만, 10ㆍ26사건으로 정작 준공식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정문 앞 기념석에 새겨진 그의 휘호 중 11월은 그 후 10월로 고쳐졌다.

▦전경련 회관은 30년간 재벌들과 영욕을 함께 했다. 역대 회장이 집무했던 2층 회장실과 회장단 회의실은 정치자금 배분 등 재계 현안을 논의한 역사의 현장이었다. 80년대 신군부 집권 후 서슬 퍼런 산업합리화 조치 때에는 정주영 현대ㆍ김우중 대우 전 회장이 회동, 치열한 수싸움을 벌였다. 재계의 분열을 우려한 이병철 전 삼성회장은 두 회장을 거중조정하기도 했다. 문민정부 시절 황금알 거위사업으로 각광 받았던 이동통신사업자 자율 선정과 전직 대통령 비자금 스캔들에 따른 재계 자정 결의, 김대중 정부 출범 후 빅딜 협상도 회장단 회의에서 조율됐다.

▦격동의 현대 재계사를 간직해온 전경련의 낡은 건물이 최근 철거작업에 들어갔다. 이 달 말까지 내부 해체를 끝내고, 내달부터 본격적인 외벽 떼어내기에 들어간다고 한다. 헐린 자리에는 2012년 말까지 지상 50층 규모 첨단 건물이 세워질 예정이다. 전경련이 새 회관 신축을 계기로 과거의 정경유착 이미지를 청산하고, 중소기업과의 상생 강화와 재벌만이 아닌 국가경제 전체를 아우르는 정책 개발에 힘썼으면 한다. 그게 오너의 사교클럽, 재벌 이익집단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해소하는 길이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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