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를 '친다'는 말은 따지고 보면 옳지 않다. 마치 '축구 찬다' 라는 것과 같다. 영어로는 'Play Golf'니까 '플레이 한다'고 해야 되나? 그것도 마땅치 않다. 하는 수없이 영한사전에서도 '골프 친다'라고 표기하고 있다.
한때 골프가 운동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가지고 논란이 많았다. 운동이 되긴 되겠지만 그렇게 심한 운동은 아니고 건강을 꾸준히 유지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하는 얘기가 옳을 것 같다. 그럼에도 "골프는 나이에 관계없이 즐길 수 있는 운동"이라는 말에는 모두 공감한다.
캐나다의 빅토리아에 살고 있던 아더 톰슨(Thompson)이라는 사람은 은퇴를 하고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몇 년을 쳐도 실력은 늘지 않았지만 그는 꾸준히 노력을 했다. 그의 소원은 자기 나이보다 적은 숫자로 스트로크를 줄이는 것이었다.
결국 노력 앞에서는 좋은 결과가 나오게 마련이다. 1966년 10월 3일, 그의 나이 97세가 되던 해에 96을 쳤다. 자기 나이보다 하나가 적은 수를 친 셈이었다. 물론 실력으로 봐서야 잘 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소원인 자기 나이보다 적은 숫자라는 점에서 성공을 한 것이다. 그는 100살이 넘게 살았는데 세상을 뜨기 전까지 골프를 즐겼다고 한다.
그런데 프로중의 최고인 타이거 우즈 (Tiger Woods)라고 해도 호메로 블랑카스(Homero Blancas)라는 사람한테는 두 손을 들어야 한다. 1962년 8월 19일 미국 텍사스주의 렁뷰라는 곳에서 24살의 블랑카스는 최고의 골프 기록을 세운다.
휴스턴 대학 졸업생인 그는 아마추어로 골프 대회에 참가했다.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프론트 나인에서 27을 치고 백 나인에서 28개를 쳐서 도합 55를 치면서 들어왔다. 기본 타 72개보다 17개가 적은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18홀의 최저 스트로크로 기록이 되지만 정식으로 인정을 받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그때만 해도 아마추어였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매너가 깔끔하기 때문에 많은 골퍼들이 함께 라운드 하기를 원해서 몸이 둘이라도 모자랄 지경이었고 선배를 깍듯이 배려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불우 이웃돕기를 위해 앞장 섰다고 한다.
골프는 신사적인 게임이라고도 하고 매너를 제일로 여기는 스포츠라고도 한다. 우리나라는 과연 이런 매너가 잘 지켜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곳곳에서 돈내기가 성행하고 있고, 심지어는 골프에서 돈을 탕진할 정도의 도박을 하는 사람조차 있다니 참으로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내가 잘 아는 가수 아무개는 골프를 잘 치는데 매일 돈내기를 하는 바람에 가수생활은 그만두고 골프도박으로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건강이 나빠져서 그나마 골프장에 못 가고 집에서 요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요새 날씨가 골프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이라고 한다. 일하면서도 골프장 그린이 눈앞에서 가물가물 보인다고 한다. 골프장 예약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 보다 더 힘이 든다고 한다. 그리고 식당에서 보면 여기저기서 젊은 사람이든 나이든 사람이든 할 것 없이 골프이야기로 시끌시끌하다.
자기가 벌어서 자기가 즐기는 일을 누가 탓 하겠는가 만은 그런 가운데에서도 어느 정도는 주변의 어려운 이들에게 관심을 갖는 마음 씀씀이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골프를 안친다. 서너 번 골프장에 구경 간적은 있지만 단 한 번도 라운딩을 한 적은 없다. '골프 안치는 것이 무슨 자랑이라고 이야기 하느냐?'라고 하면 나로서는 할 말이 있다. "별 짓 다 하고 살았는데 골프까지 치면 어떻게 하나." 가 내 변명이다. 하지만 '이론으로는 골프 9단'이라고 둘러 댄다.
그러나 지금 고백하건 데 나는 우리나라에서 비교적 일찍 골프와 인연을 맺었다. 1964년 어느 가을날 가수 최희준과 박형준이 나를 데리고 장충단에 있는 골프연습장 (그때는 드라이빙 레인지라는 말을 안 썼다)으로 갔다.
국립극장 건너편에 있는 자유센터라는 곳인데 지금은 자동차극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곳에 골프연습장이 있었다. 지금처럼 공이 자동으로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치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고무 티에 올려놓고 치는 식이었다. 나는 난생 처음으로 골프채를 잡았다.
왜 그런지 그때는 티칭 프로가 없었다. 어쩌면 프로가 있었는데 우리가 초빙을 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피차 서툰 솜씨로 가르쳐 주면서 공을 치는데 나는 도무지 재미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맞기는 잘 맞았다. 헤드업을 하지 말고 몸의 힘을 빼고, 왼 팔을 뻗고 등등 잔소리를 들어가며 나름대로 두 세 박스를 쳤다. 그리고 그것이 끝이었다.
나는 사실, 좀 와일드 한 운동을 좋아했다. 등산에 빠져 있었는데 그것도 암벽, 빙벽등반을 하러 다녔다. 그리고 윈드서핑, 스키, 스쿠버다이빙, 권총사격, MTB산악자전거 등등을 하고 다녔다.
그러니 골프를 치러 다닐 시간적 여유가 있을 리가 없었다. 골프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매우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나이가 들어서도 언제든지 내가 원하면 배울 수 있는 것이 골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을 최근에서야 깨달았다.
"필드에 한번 나가시죠"라고 나를 초대하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그때마다 나는 "골프 안치는데요. 아니 못 치는데요" 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그들은 한결같이 나를 외계인 보듯이 쳐다본다.
그리곤 꼭 한마디 덧붙인다. "치시면 아주 잘 치실 텐데요" 언론계 또는 대중예술계와 관련 있는 사람들 중에 골프를 안치는 사람이 어쩌면 나 혼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따져보면 지금도 나한테 '머리 얹어 준다'고 제안하는 사람들이 아마 50명이 넘을 것이다. 한 달에 한 명씩 만 내가 따라 다녀도 5년은 거뜬히 지낼 수 있을 텐 데, 용기가 없어서 그런지 그게 잘 안되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그들에게 내 머리를 얹어달라고 부탁할 수 있는 기회가 와야 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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