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과학 또는 인지(認知) 과학자 가운데 마술 속임수와 관객의 인지 사이의 작동기제를 연구하는 이들이 있다. 이를테면 공중에 던진 공을 감쪽같이 사라지게 하는 마술에 왜 관객이 현혹되는지 열심히 탐구한다.
공놀이 마술 쇼에서 마술사는 눈에 잘 띄는 알록달록한 작은 공을 높이 던졌다 받기를 반복하다 슬쩍 던지는 시늉만 하고는 공을 감춘다. 그러나 관객들은 으레 공이 공중에 올라간 것으로 여긴다. 이 때문에 어느 순간 공이 보이지 않으면 허공 속에 사라졌다고 착각하고 '신기한 마술'에 마냥 감탄한다.
보수ㆍ진보 모두 편향된 인식
이런 마술의 작동기제는 인간이 모든 사물을 사진 촬영하듯 세세히 인지한다는 전통적 이론과 어긋난다. 그 연유를 규명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거듭한 과학자들의 결론은 대충 이렇다. "인간은 스스로 관심을 기울이고 당연한 결과로 예상하고 기대하는 것만을 인지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를 둘러싼 우리사회의 끝없는 논쟁은 '마술의 인지과학'을 닮은 느낌이다. 로켓발사 '마술 쇼'에 스스로 현혹된 나머지 마냥 혼란스러운 논쟁에 빠진 게 아닌가 싶다.
'미사일 위기'에 이른 정부의 책임론 공방으로 시작한 논쟁은 '미사일이냐 위성이냐'를 거쳐 황당한 '요격' 논란으로 이어졌다. 또 '발사 성공이냐 실패냐'를 다투다 안보리 결의와 의장 성명 사이를 가늠하는데 골몰했다. 그러다 급기야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전면 참여를 놓고 색깔과 노선을 구별하기 힘든 혼전을 벌인다. 이 모두가 로켓발사와 대응조치의 의미를 각기 제 편한 대로 인지한 탓으로 비치는 것이다.
보수쪽은 '대포동 2호 미사일'은 미국 본토까지 위협한다는 낡은 주장에 기대 지레 '위기 인식'을 부추겼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북한의 주장대로 '위성 발사'라고 지레 김을 빼는 바람에 머쓱해졌다. 또 마지못해 '로켓발사'로 바꿔 부르면서도 단호한 제재를 촉구했으나, 유엔 안보리가 고작 의장 규탄 성명을 내는 바람에 맥이 빠졌다.
이 때문에 정부가 다짐한 PSI 전면 참여에 그나마 기대를 걸었다가 이마저 정부 내 이견 때문이든 전략적 고려 때문이든 발표가 지연되자 정부를 질책하며 정체 모호한 '원칙'을 강조한다. 그러나 북한이 "PSI 참여는 선전포고"라며 긴장을 고조시킬 의도를 공공연히 내비치는 판국에 강경대응을 촉구해 누구를 돕겠다는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가뜩이나 힘겨운 보수 정부를 윽박질러 뭘 얻으려는지 속내를 알 수 없다.
진보쪽도 냉철하게 사리를 분별한다고 보기 어렵다. 보수가 흔히 북한의 위협과 위기를 과장한다고 욕하던 진보쪽에서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앞장서 '위기론'을 펴는 것은 아이러니다. 대북정책 변화를 끈질기게 요구하는 것은 '위기'의 주된 책임이 정부에 있다는 논리를 전제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는 셀리그 해리슨과 같은 진보학자들도 "로켓발사 쇼의 주된 목표는 체제 결속"이라고 진단하는 것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과 후계문제 등으로 흔들리는 체제 생존을 위해 강경으로 치닫는 북한을 제어할 수 있는 절묘한 정책수단이 있을지 의문이다. '햇볕'은 바람직한 정책이었지만, 북한의 변화에 관계없이 '햇볕'을 외치는 것은 오히려 안이하다. 진정한 고민보다 정부 비판에만 집착하는 심리가 엿보인다.
'잘 속는 관객' 인상 주지 않아야
북한의 로켓 '마술 쇼'에 물색없이 현혹된 듯한 상태에서 깨어나려면 미국의 대응을 잘 살피는 게 도움될 성 싶다. 오바마 행정부에 영향력이 큰 브루킹스 연구소의 북한전문가 마이클 오핸런은 "로켓발사는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일이 아니다"며 "미사일 자체는 대량살상무기가 아니고, 어떤 국제조약도 개발과 시험을 금지하지 않는다"고 일깨웠다. 따라서 그에 걸맞게 절제된 대응을 할 것을 정부에 권고했다. 그 것이 '잘 속는 관객'이라는 메시지를 북한에 보내지 않는 지혜라는 설명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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