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퀴벌레를 소독하는 남자 이야기를 쓴 뒤로 정기 소독이 나오면 괜히 아는 척을 하게 된다. 이야기 속의 남자는 바퀴벌레의 내성에 대해 걱정한다. 그 어떤 약도 듣지 않는 천하무적의 바퀴벌레가 등장할지 몰라 불안해한다. 청년에게 물었다. "이렇게 내성만 키워가다 나중엔 어떻게 되는 걸까요?"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은 소독이 효과적으로 잘되고 있는지로 질문을 알아들은 듯했다. "약 품종을 바꿔가면서 잘 관찰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청년이 돌아간 뒤에도 내성에 대해 생각했다.
중학교 친구 어머니 중에 '사리돈'에 중독된 분이 있었다. 새벽같이 시장에 나가 밤중에야 돌아왔다. 시장에 가면 그분을 볼 수 있었다. 머리가 무거운 듯 늘 한 손으로 턱을 받친 채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한 알에서 시작한 약은 점차 개수가 늘어 나중에는 열 알이 넘었다.
고만고만한 친척 아이들이 싸워서 한 줄로 세워놓고 벌을 주었다. 겁을 내거나 울먹이는 아이들 틈에서 한 아이는 약간 모로 선 채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두 귀를 꽉 막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듯했다. 나중에 보니 그 애의 엄마인 내 사촌이 그 애를 쫓아다니면서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밖에 되지 않은 그애는 "떠들 테면 떠들어라"는 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요즘 남편이 딱 그 표정이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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