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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홍합·멜론·고둥… 신약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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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홍합·멜론·고둥… 신약을 부탁해!

입력
2009.04.2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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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뱀의 독, 도마뱀의 침, 바다달팽이의 독성, 버드나무 껍질…

도대체 이런 걸 어디에 쓸까. 해외토픽에나 나올 법한 기인들의 메뉴? 아프리카나 아마존 원시 부족들의 민간요법? 혹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정력제?

아니다. 세계적 제약사들의 엄연한 연구 아이템이다. 이른바 생명자원연구. 바이오산업 열풍 속에서 각국 정부와 글로벌 제약사들은 새로운 의약품 및 건강식품에 쓰일 생물종 확보와 이를 활용한 연구개발(R&D)를 위해 지금도 사막과 바다, 밀림 속을 뒤지고 있다.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로 알려진 프랑스 아비뇽 지방에는 '늙지 않은 멜론'이 있다. 보통 멜론이 3일 정도 지나면 시드는데 비해 아비뇽 멜론은 12일이 지나도 싱싱하다. 이유는 항산화 효소(SOD). 멜론에는 노화를 막는 SOD가 들어있는데, 아비뇽 멜론에는 SOD가 보통 멜론보다 8배 더 함유되어 있다.

프랑스 제약업체는 이 멜론에서 SOD를 분리, 상품화해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한 30여 개 나라에 팔고 있다. 지난해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뤼크 몽타니에 박사는 멜론 SOD가 에이즈 환자의 합병증을 완화시켜 준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도 했다.

혐오스러운 동물도 유용한 신약 재료로 쓰이고 있다. 한국릴리가 지난해 말 내놓은 당뇨병 치료제 '바이에타'는 미국 남서부 사막에 사는 '힐라 몬스터'라는 도마뱀의 침에서 원료를 얻었다.

1년에 3,4차례만 먹이를 먹는 이 도마뱀은 먹이를 먹지 않을 때는 에너지를 보존해야 하기 때문에 인슐린을 만드는 췌장기능을 잠재웠다가, 먹이를 먹을 때면 기능을 되살리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연구진은 도마뱀의 침에 췌장 기능을 되살리는 호르몬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 약제화에 성공했다.

방울뱀의 독도 마찬가지. 말레이시아 방울뱀이 지닌 독이 혈액응고를 막아준다는 사실에 착안, 이 뱀의 독에서 추출한 '바이프리넥스'라는 단백질 의약품은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임상시험 마지막 단계에 있다.

바다는 최근들어 가장 인기 있는 신약개발의 보물 창고이다. 지구 전체 생물종의 80%가 바다에 살고 있고, 육지 생물에 비해 개발이 덜 된 이유 때문이다.

뉴질랜드의 마오리족은 관절이 튼튼한 것으로 유명한데, 시스팜 연구진은 이들의 식생활 습관을 살폈더니 초록입홍합을 생식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이용해 관절염 치료제를 만들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2005년 나오자마자 6개월 만에 6,000만 달러 매출을 올려 화제를 모은 말기암 진통제 '프리알트'는 열대와 아열대에 사는 청자고둥(바다달팽이의 일종)이 지닌 '코노톡신'이라는 독소를 이용해 만들었다. 이탈리아의 미백치약 전문 상표 '블랑스(BlanX)'는 북극 이끼를 주성분으로 치약을 만들기도 했다.

나무나 식물은 일찍부터 재료로 쓰였다.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조류인플루엔자의 유일한 치료제로 손꼽혔던 로슈의 '타미플루'는 중국의 토착식물 스타아니스의 추출 성분으로 만들어졌고, 충치예방성분 자일리톨은 핀란드 산 자작나무이다. '아스피린'은 버드나무 껍질에서 뽑아낸 살리신을, 항암제 '탁솔'은 태평양에 서식하는 주목(朱木)에 함유된 물질을 주 원료로 하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화학적으로 합성한 기존 제품은 부작용 등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라며 "반면 자연에서 찾은 물질은 독성과 안전성에서 자유로워 실패율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물론 경제성도 중요한 이유이다. 업계에서는 2015년에는 천연물 신약시장 규모가 2조5,000억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는데, 천연물로 만들어져 임상이 진행 중인 항암제만 수 십 종이다.

이쯤 되다 보니 업체들은 자연을 활용한 신약개발에 엄청난 인력과 돈을 쏟아 붓고 있다. 화이자가 2006년 2,300만 달러를 들여 뉴욕식물원 안에 화이자 식물과학연구소를 만들었고 머크와 드레곤인터내셔널 등은 중국 제약회사와 함께 중국의 천연물을 활용해 신약 개발에 나서고 있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천연물 신약 개발 규정을 따로 만들어 3~5년 독점권을 주는 등 세계적 제약사와 각국 정부가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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