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중독으로 한때 선수 자격까지 박탈당했던 조시 해밀턴(28ㆍ텍사스)이 지난해 실버 슬러거상(포지션별 최고 타자에게 주는 상)을 수상하며 인간 승리 드라마를 썼다면, 올해 휴먼 스토리의 주인공은 단연 잭 그레인키(26ㆍ캔자스시티)다.
메이저리그 6년차 우완투수 그레인키의 굴곡 많은 야구 인생이 그라운드 안팎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레인키는 20일(한국시간) 현재 3승 평균자책점 0의 '퍼펙트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9일 시카고 화이트삭스전에 선발등판해 6이닝 무실점으로 시즌 첫 승을 따낸 그레인키는 14일 클래블랜드전 5이닝 무실점 승리로 연승을 달렸다.
그리고 19일 텍사스전에서는 9이닝 7피안타 10탈삼진의 눈부신 호투로 생애 첫 완봉승을 따냈다. 그레인키는 메이저리그 전체를 통틀어 평균자책점 단독 1위, 다승 공동 1위, 탈삼진 2위(26개)에 랭크돼 있다. 지난 시즌부터 이어온 연속 이닝 무실점 기록은 34이닝까지 늘어났다.
그레인키의 성적이 더욱 돋보이는 건 그가 20대 초반에 겪은 시련 때문이다. 마이너리그 최고 유망주 타이틀을 안고 2004년 빅리그 무대를 밟은 그레인키는 그 해 8승11패 평균자책점 3.97을 기록했다. 사람들은 그를 대투수 그렉 매덕스와 비교하며 찬사를 보냈고, 아디다스, 롤링스 등 유명 스포츠 브랜드와의 후원 계약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이듬해 성적은 5승17패 평균자책점 5.80. 극심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동반한 사회불안장애가 그의 정신을 좀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급기야 2006시즌을 앞두고 스프링캠프를 이탈한 그레인키는 다행히도 그라운드를 등지지는 않았다.
6개월 동안 지루하게 이어진 심리치료를 이겨냈고, 시즌 막바지 등판에서 1이닝 무실점으로 희망을 쐈다. 2007년 올린 7승7패 평균자책점 3.69는 건강한 그레인키를 대변하는 성적.
그리고 지난해엔 데뷔 후 처음으로 200이닝 이상을 소화하며 13승10패 평균자책점 3.47을 기록했다. 어떤 공을 던질까 고민하며 미간을 찌푸리는 예전의 그레인키는 없었다. 시속 150㎞가 예사인 위풍당당 강속구 투수만이 마운드를 지배하고 있었다.
올시즌을 앞두고 4년 장기계약 '선물'까지 받은 그레인키. 그를 두고 캔자스시티 팬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20승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캔자스시티의 20승 투수 배출은 지난 1988년(마크 구비차ㆍ20승8패)이 마지막. 21년 만의 꿈의 20승이 '제2의 인생'을 찾은 그레인키의 손에 달려있다.
양준호 기자 pir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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