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쇽졀없시 장안 거리에 요참하고(베어 죽이고) 그 가산을 ?Ц舟求?거두어들이니) 황금이 사만 량이오 금쥬보패(金珠寶貝)는 불가승슈러라. 몸에 가진 바 경뵈(가벼운 보배) 만코(많고) 영거하여(가지고) 온 거시 십만 재산이라…'(김만중의 '사씨남정기'에서)
이재(理財)를 천하게 여긴 것으로 알려진 조선, 화폐경제가 뿌리 내린 17세기 이후 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실제로 어떠했을까. '허생전' '양반전' '최척전' '김영철전' 등 이 시기에 창작된 고전소설을 통해 돈이 지배하던 조선의 사회상을 들여다보는 논문이 최근 발행된 계간 '정신문화연구' 봄호에 실렸다.
이민희 강원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기고한 '17, 18세기 고소설에 나타난 화폐경제의 사회상'은 "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던" 양란 이후의 조선 사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돈을 대하는 조선인의 엇갈린 시선
이 교수는 17세기에 일어난 소설의 가장 큰 내적 변화로 생활상의 핍진한 서술을 꼽았다. 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차례로 겪은 뒤 현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는 경향이 생기는데, 돈과 상거래에 대한 사대부와 기층민의 인식이 변화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농공상의 뿌리 깊은 관념도 여전해, 이 시기 소설들에서는 화폐경제에 대한 긍정적ㆍ부정적 시각이 혼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때 송우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경전과 역사에 해박했고… 송우가 최척에게 말했다, 남은 생이 얼마나 된다고 굶주림을 참으며 산도깨비의 이웃이 된단 말인가. 나와 함께 오ㆍ월 땅을 오가면서 비단이나 차를 매매하며 남은 생을 즐기는 게 어떤가. 최척이 홀연 깨닫고 마침내 송우와 함께 길을 떠났다.'(조위한의 '최척전'에서)
이 교수는 이 소설에서 최척이 '홀연 깨닫'는 사건을 혁명적 변화라고 지적한다. 유교적 가치관이 절대적일 수 없다는 자각, 살기 위해서 장삿길에 뛰어들 수도 있다는 의식이 17세기 이전의 작품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런 변화가 "화폐가 경제생활에 필수적인 수단이 됐고, 고위 관료들까지 상인과 결탁해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려 했던 17세기 말 이후의 사회상을 반영한 결과"라고 분석한다.
하지만 상업과 상인을 멸시하는 의식도 작품 속에서 드러난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 사이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숙향전'(작자 미상)에는 마고할미가 숙향을 찾아온 이선에게 시험 삼아 거짓말을 하는데 "숙향이는 병신이고 상인의 딸"이라는 이유로 만나지 못하게 한다.
당시 가장 천대받던 부류가 장애인과 상인이었음을 보여준다. 박지원(1737~1805)의 '양반전'에서도 "양반은 손에 돈을 집지 말아야 하고 쌀값을 묻지 말아야 한다"고 기술되고 있다.
반면 '왕경룡전'(작자 미상)에는 돈으로 사람을 평가하고 이익을 위해 서슴없이 인간관계를 끊는 세태가 자연스럽게 묘사되는 등, 17, 18세기 돈을 바라보는 조선인의 시선이 매우 복잡함을 알 수 있다. 이 교수는 "긍정, 부정을 떠나 이 시기 조선인들이 이미 화폐경제 사회의 가치관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소설에 비친 17세기 '쩐의 전쟁'
17, 18세기 고전소설은 화폐경제로 인한 사회적 병폐가 이 시기에 이미 심각했음을 보여준다. 매점매석이 등장하는 박지원의 '허생전'이 유명한데, 이 소설에서 허생이 벌어들인 100만냥은 당시 조선 경제 전체를 좌지우지할 만큼 큰 액수였다.
18세기 초ㆍ중반 조선 전체의 동전 유통량이 500만냥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미 소수에 의한 부의 독과점이 심각했음을 보여준다. 박지원은 이 소설에서 안전한 자금운용 방법으로 분산 투자를 권하기도 한다.
'대체로 천냥은 적은 재물이어서 물건을 마음껏 다 살 수는 없지만, 이를 열로 쪼갠다면 백냥짜리가 열이 될 테니 열가지 물건을 사기에 넉넉하지. 물건이 가벼우면 돌려 빼기가 쉽기 때문에 한 가지 물건이 비록 밑졌다 하더라도 아홉가지 물건은 남는 법이야. 그런데 이건 보통 이문을 남기는 방법이고….'(박지원의 '허생전'에서)
고리대금의 성행도 이 시기 소설에 중요한 사회 부조리로 등장한다. '왕경룡전'에는 고리대금업자의 아들인 왕경룡이 빌려준 돈을 받아 가지고 오면서 기방에 들러 속물적 인물들과 어울리는 장면이 흥미진진하게 그려진다.
이 시기 소설은 속량(贖良)과 납속책(納贖策) 등 화폐경제의 또 다른 사회상을 반영하기도 하는데, 화폐경제 사회의 병폐가 서사 작품들의 주된 축이 됐음을 볼 수 있다.
'영철이 봉황성으로 돌아갔다. 유림이 영철에게 말했다. 네 죗값을 치르기 위해 내놓은 잎담배는 호조의 물자이니 네가 갚도록 해라… 호조에서 관향사에 공문을 보내 영철에게 은 200냥을 받아내라고 독촉했다.'(홍세태의 '김영철전'에서)
이 교수는 "17, 18세기는 민족 모순과 신분 모순에 더해 화폐경제 모순을 안고 있던 시기"라며 "이 시기의 소설들은 역사서가 전하지 않고 있는 현실의 문제를 생생하게 포착해서 재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유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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