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라베 지음ㆍ장수미 옮김/이룸 발행ㆍ512쪽ㆍ1만5,900원
"청년들을 무차별적으로 잡아내 사살했으며 소녀들을 강간했다. 술에 취한 일본 군인들은 제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무엇이든, 누구든 찔러 죽이거나… (중략) …총검으로 멋대로 창상을 입히는 것을 유흥거리로 삼았다."(237쪽) 1937년 12월 난징에서 30만여명의 중국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8만여명의 여성이 강간당했다. 제국주의적 팽창욕에 눈 먼 일본이 중국의 중심을 짓밟았던 '난징 대학살'이었다.
그 때까지 30년 간 중국에서 일했던 51세의 독일 상인 존 라베는 그 모든 참상을 목격하고, 기록했다. 나아가 중국인들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면 그런 아이러니가 없다. 일본의 군국주의적 침탈에 맞서 활동을 펼쳤던 독일인이니, 논리적으로 보면 그는 반파시스트여야 한다. 그러나 그는 히틀러를 인도적인 정치가로 오인해 민족사회주의독일노동자당 즉 나치에 가입해 있었다.
오해는 이어진다. 난징에서의 인도적 활동을 계기로 세계로부터 '난징의 영웅'으로 칭송받던 그는 일본군의 잔학행위를 고발하는 연설문 원고를 히틀러에게 보내기까지 한 것이다. 결국 게슈타포가 그를 찾아와 원고와 기록 필름을 압수했다. 심문 결과 라베는 순전히 인간적인 이유로 그 같은 '이적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인간의 양심을 지키려 했던 라베는 결국 일본군의 폭격에 맞서 나치당기를 펼쳐 든 나치였다. 그러나 조국 독일은 귀국한 그에게 즉각 체포라는 대응을 안겼다. 그는 나중에 복권돼 지멘스 차이나의 난징 지점을 이끌었다.
오랜 세월 뒤에도 라베가 잊혀지지 않은 것은 꾸준히 썼던 일기 덕분이다. 게슈타포가 일기장을 압수했지만 그가 난징에서 메모한 것(1937년 9월~1938년 4월)까지는 손을 대지 못 했다. 두 권자리 책으로 발표된 <난징 폭격> 이다. 그는 전쟁으로 피폐한 조국 독일에서 참담하게 살다 1950년 숨을 거뒀다. 난징>
라베의 삶은 종교나 이념에 앞서, 희망과 인간적 양심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인간이 보여주는 드라마다. 1997년 출판돼 그동안 잊혀졌던 라베라는 존재를 알린 이 책은 독일 중국 프랑스 3개국 합작 영화로 만들어져 이 달 2일 독일에서 개봉됐다. 오스카 수상 경력의 플러리안 갈렌베르가 각본과 감독을 맡은 영화는 28일에는 중국, 오는 10월에는 제14회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국내 소개될 예정이다.
라베에게는 이념도 조국애도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일본인들이 교수형을 당하는 것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그런 죄값을 받을 짓을 했을지라도…." 그가 도쿄 전범재판소에서 원고측의 증인 출석 요구를 거절한 이유다. 역사의 격동기에서 휴머니즘의 가치를 온몸으로 입증한 사람이었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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