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청년 노동자'란 뜻의 일반명사가 된 전태일(1948~1970)이 불꽃으로 화한 지 내년이면 40년이다. 전태일기념사업회가 40주년을 앞두고 <전태일 평전> 을 새로 펴냈다. 조영래(1947~1990) 변호사가 쓴 평전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을 고치고 순서도 바꿨다. 그래서 기념사업회는 '개정판'이 아니라 '2009년 신판'이라고 책을 소개했다. 전태일>
새로 나온 평전 속에서 전태일은 투사가 아니라 따뜻한 가슴을 지닌 청년으로 숨을 쉰다. 시대의 변화가 반영됐다. <전태일 평전> 을 보고 민주화투쟁의 의지를 다지는 젊은이는 더 이상 없다. 대신 이 책은 청소년들에게 엄혹했던 한국 현대사를 전해주는 교양서가 됐다. 기념사업회는 이런 변화가 인간 전태일의 진면목을 보여줄 수 있는 토대가 됐다고 설명했다. 전태일>
장기표(64)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그 동안 너무 '운동권 속의 전태일'로 매몰돼 온 측면이 있다"며 "전태일은 투쟁성도 뛰어났지만 인간적인 성품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조영래 변호사가 쓴 평전에는 '죽음'이라는 단어가 300번 넘게 나온다. 하지만 새로 나온 평전에서는 10분의 1로 줄어들었다. 책임편집자 오도엽씨가 여기 얽힌 이야기를 들려줬다. "조영래 변호사는 자신이 쓴 평전 발간 뒤 많은 대학생들이 죽음으로 권력에 항거하는 것을 괴로워했다.
그의 의도는 결코 분신으로 사회를 변혁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조 변호사가 끝까지 자신이 평전의 저자임을 밝히지 않은 이유에는 그런 괴로움도 있었다." 새 평전은 원래 평전의 맨 앞부분에 있던 투쟁사를 부록으로 빼 뒷부분으로 옮겼다. 대신 풀빵을 사서 '시다'들에게 나눠주는 전태일의 모습을 도드라지게 실었다.
<전태일 평전> 이 지금까지 얼마나 팔렸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26년 전 처음 책이 나오고 7~8년 동안은 서점에 책이 깔리는 대로 누군가 '수거'해갔기 때문이다. 공식 집계는 없지만 기념사업회 측은 약 140만부 가량이 나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 숫자만큼의 젊은이들이 이런 전태일의 목소리를 들은 것이다. "다 같은 인간인데 어찌하여 빈(貧)한 자는 부(富)한 자의 노예가 되어야 합니까. 왜 가장 청순하고 때묻지 않은 어린 소녀들이 때묻고 부한 자의 거름이 되어야 합니까." 세상이 변했다지만 전태일의 목소리는 여전히 큰 울림을 준다. 전태일>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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