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학의 본질이 과학적 활동의 '결과'보다는 과학적 '접근 방법' 자체에 있다고 봐요. 따라서 과학적 방법론이 사회 구석구석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겠죠."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고등과학원 연구원 이종필(38ㆍ사진)씨가 쓴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글항아리 발행)는 과학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뒤집는다. 저자의 문제의식을 요약하면 이것이다. 과학을 왜 '설명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여길까, 오히려 세상을 뒤집어보는 뒤집개로, 해부하는 메스로 써야 하는 게 아닐까. 이 역발상이 발산된 책의 내용은 우선 소제목부터가 흥미롭다. '엔트로피 이론으로 이해할 수 없는 BBK 사건' '해외 투자가 바로 암흑물질' '가장 과학적인 김수현 드라마' 등등. 험한 정치판, 미묘한 문화판에서 과학이라는 언월도를 휘두르는 모습이 무척 통쾌하다. 대통령을>
"과학을 일상생활과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신비화돼 있는 거죠. 과학이 적용되는 범위를 실험실로 국한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과학적 사고과정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곳이 국회의사당이라고 봅니다. 합리적 논리와 일관된 사고가 결여된 대표적인 곳이 여의도니까요."
이씨는 1980년대 학번의 막차에 올라탄 세대다. 물리학 전공은 뒷전이고 길거리의 함성 속에서 사회과학 서적을 탐독했다. 그런 지적 배경이 서울대에서 물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에도 자연스레 정치ㆍ사회 현상을 관심을 쏟게 만들었다. 이공계 위기, 황우석 사태 등은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그의 시각이 대중의 관심을 받도록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작업과 최근의 '인문ㆍ자연과학 통섭 움직임' 사이에 다소 거리를 뒀다.
"현재 논의되는 통섭에서 과학과 인문학의 기계적 결합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그런 수준을 넘어서려면 '무엇이 과학을 과학답게 하는가'라는 메타과학적인 사고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축적된 지식에만 주목하지 말고 과학적 활동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대통령을 위한 과학 에세이> 는 그런 문제의식을 시도해 본 결과입니다." 대통령을>
학자, 특히 과학자가 정치ㆍ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발언하는 것이 여전히 부담스러운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이씨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아인슈타인이 반핵운동에 전념했다는 일화는 유명합니다. 인류의 평화와 행복 앞에 과학자인가 아닌가, 그 과학자의 능력이 출중한가 아닌가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과학자로서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을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잘못을 바로잡는 것도 제 과제 중 하나겠죠."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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