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강원 인제군 한계리의 휴게소 주차장에 세워진 승용차에서 지모(47ㆍ강원 속초), 이모(29ㆍ전남 여수), 여성 이모(21ㆍ경남 양산)씨 등 3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서울에서 만나 강릉에서 렌터카를 빌렸으며, 청테이프로 밀폐한 차 안에는 연탄 화덕이 있었다. 여성 이씨의 소지품에선 '대학 졸업하면 돈을 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쉽지 않았다'는 유서가 발견됐다.
이로써 강원도에선 열흘 동안 세 건의 동반자살이 발생했다. 더욱이 자살 방법 등이 유사해 모방 자살 가능성이 제기됐다.
■ 잇따른 동반자살…뒤숭숭한 강원
앞서 8일 정선의 민박집에선 4명 모두 사망했고, 15일 횡성의 펜션에선 자살을 시도한 5명 중 10대 2명을 포함한 4명이 숨졌다. 경기 가평군에서도 9일 20대 남녀가 차량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들 사건 모두 ▦사는 곳이 다른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만나 ▦렌터카로 자살 장소로 이동한 뒤 ▦연탄가스를 마셨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대부분 인터넷에서 처음 만나 자살 방법, 장소 등을 사전 모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강원 경찰은 도내에서 동반자살이 잇따르자 당혹해 하고 있다. 특히 사망자들의 행적과 자살 방법이 유사해 모방 자살이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인제경찰서 측은 "사망자들이 렌터카로 특정 차종을 고집했다는 진술 등으로 미뤄볼 때 다른 사건을 모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원경찰청은 "관할서의 보고를 토대로 사건의 연관성을 살펴 수사방향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반자살은 탤런트 안재환씨가 자살한 지난해 9월부터 급증 추세다. 언론에 보도된 것만도 지난해 9~10월 4건, 11~12월 6건이 발생했고, 올 들어 잠시 수그러드는가 싶더니 3월 인천 연수구에서 남녀 3명이 자살한 사건을 시작으로 다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 개인자살 시도보다 사망률 높아
동반자살 결행의 주된 이유는 처지 비관. 정선 사건의 경우 신모(35)씨는 사업 실패, 김모(43)씨는 장기 실업을 겪었고, 이모(23ㆍ여)씨는 심한 얼굴 기미로 고민해 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 관계자는 "유서나 주변인 진술을 종합하면 10대는 학업 부담, 20대는 취업난, 30ㆍ40대는 경제적 곤란으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승민 백석문화대 교수는 "외국의 동반자살은 실존적 고민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지만, 우리나라는 개인 자살과 다를 바 없이 비관형 자살이 주류를 이룬다"고 말했다.
그러나 동반자살은 개인 자살 기도에 비해 훨씬 치명적이다. 김정진 나사렛대 교수는 "동반자살의 경우 전원 사망이 71%, 일부 사망이 26%로, 5% 안팎인 개인 자살 사망률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말했다. 원인은 뭘까.
이홍식 연세대 의대 교수는 "자살 충동을 가진 이들끼리 모이면 서로 '자살 조력자' 역할을 하게 되고, 인터넷을 통한 정보 공유와 모방을 통해 자살 수단도 훨씬 치명적이고 완벽하게 갖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백종우 경희대 교수는 "동반자살은 혼자서는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횡단보도 건너길 주저하다가 몇 사람 모이면 남 뒤를 따라 쉽게 무단횡단을 하게 되는 심리와 마찬가지"라고 풀이했다.
■ 원인 탐구ㆍ예방 등 대책 시급
그러나 동반자살의 매개인 인터넷 자살 사이트에 대한 감시는 여전히 소홀하다. 한국자살예방협회에서 '자살 예고글'을 발견해 해당 사이트에 삭제 요청을 하는 것 외엔 상시적 감시 기구가 없다.
단속도 어려워지고 있다. 자살예방협회 관계자는 "포털 지식검색 사이트 등에 자살 도움 요청글을 올린 뒤 쪽지나 메일, 비공개 카페를 통해 폐쇄적으로 교류하는 것이 요즘 추세"라고 전했다.
동반자살 예방을 위해 수사관행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정진 교수는 "경찰이 시신 확인 단계에서부터 심리학, 사회학 분야 전문가를 참여시켜 동반자살의 원인을 심층 탐구하는 '사회심리학적 부검'이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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