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일인데도 가끔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집 근처의 대형 할인마트에서였다. 집에서 급히 뛰어나온 듯 눌린 머리에 민소매, 반바지 차림인 젊은 엄마가 눈에 띄었다. 그녀는 무슨 일엔가 퉁퉁 부어 있었다. 피곤하고 재미 하나 없는 듯한 얼굴이었다. 바로 몇 발짝 뒤에 카트가 있었다. 그 카트에는 연년생으로 보이는 사내아이 둘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카트를 밀고 당기고 올라타기도 하던 두 아이는 별안간 티격태격대기 시작했다.
큰애가 툭 친 주먹에 작은애가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렸다. 그 순간 엄마가 휙 고개를 돌려 두 아이들을 노려보았다. "조용히 해, 이 웬수들아!" 몇몇 사람들이 돌아다보았다. 가장 놀란 건 그 말을 한 장본인이었다. 집에서나 하는 말을 밖에서까지 해버린 것이다. 속이 상하고 창피한지 얼굴이 울 것처럼 붉어졌다.
그녀는 정신없이 카트를 밀며 다른 코너로 사라졌다. 그때 어떻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그런 폭언을 할 수 있냐는 눈총보다는 다 안다고 힘든 거 안다고 동지의 눈빛만 보내주었더라면, 후회가 된다. 아기와 놀다 잠깐 졸았는데 계속 온몸이 저릿저릿했다. 팔이 아팠다가 허벅지가, 가끔은 숨이 막히기도 했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기가 내 몸에 올라타고 질근질근 밟고 있었다. 아기를 봐주시던 친정 어머니가 그예 병이 났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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