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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프리 런치' 빈자가 값치른 부자의 '공짜 점심' 맛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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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프리 런치' 빈자가 값치른 부자의 '공짜 점심' 맛있더냐

입력
2009.04.21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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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케이 존스턴 지음ㆍ박정은 등 옮김/옥당 발행ㆍ512쪽ㆍ2만1,900원

오너십 사회(ownership society). 2005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 후 했던 취임사에서 썼던 말로 '개인의 소유를 더 늘리는 사회'를 뜻한다. 정작 지금의 경제위기로 나타난 현실에서 저 말은 '채무 사회'로 귀결됐을 뿐이다. 그러나 부시로 보자면 대단히 일관성 있는 정책이었다. 그들의 정치적 신념인 자유주의가 경제 분야의 신념으로 고스란히 이전된 것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이미 2000년 대선 당시 만찬장에 모인 자신의 지지자들을 향해 그는 정체를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어떤 사람들은 여러분을 엘리트라고 부르지만 나는 여러분을 '내 기반(my base)'이라 부르겠다." 그렇게 오만할 정도로 당당했던 부시와 그의 행정부가 "초 부유층과 기타 계층 간의 양극화 현상이 상당히 우려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2007년이었다.

책 제목으로 쓰인 <프리 런치> (free lunch)는 공짜 점심을 뜻한다. "언제 점심이나 같이 하시죠." 이 말은 때로 '비즈니스'의 개시를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문제는 누군가 점심값을 물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고위 공직자들이 먹은 공짜 점심 값이 바로 보통 사람들이 낸 세금이다. 이 책 제목 프리 런치는 바로 자신들이 속한 계층을 위해 정부에서 제공하는 다양한 혜택과 보상이라는 호화판 공짜 점심을 벌인 뒤, 계산서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떠넘긴 미국의 부시 정부를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미국 최대의 골칫거리,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원인은 바로 공짜 점심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위기를 촉발시킨 사회ㆍ구조적 문제를 이 책은 심층 추적한다. 정치와 경제의 상층부만이 이득을 취하는 정치자금법, 굵직한 로비 활동에 연루된 막대한 돈의 흐름 등을 한 편의 소설처럼 펼쳐놓았다. 이 책의 미덕은 심층의 실체를 향해 파고드는 집요함에 있다. 공짜 점심의 관례 때문에 국민들이 얼마나 고통에 방치돼 있는지를 레이건 행정부 이후부터 추적한다. 지난 30년 간 미국 정부가 실제로 한 일이라고는 다수로부터 공짜 점심을 빼앗아 소수를 부유하게 하는 쪽으로 변화를 주도해 온 일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육 분야마저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지금 미국의 대학 교육에서는 에듀캡(EduCap) 등 대출기관이 학자금 대출의 25%를 담당하고 있다. 상환의 위험을 내세워 일방적으로 이율을 매기고 있지만, 그들 뒤에는 의회가 버티고 있다. 많게는 20%에 달하는 이자율 때문에 허덕이는 학생들의 딱한 이야기는 지금도 웹사이트(www.studentLoanJustice.org)에 오르고 있다. 카드빚에서 고리대금까지, 빚쟁이를 양산하는 시스템 역시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다. 이 책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갖는 이유다.

고발성 강한 경제 기사로 퓰리처상 등 여러 상을 수상한 저자 데이비드 케이 존스턴의 기자 생활 40년 공력이 서려 있다. 신문의 분석 기사를 읽는 듯 생생한 사실감이 느껴지는 이 책은 그래서 21세기의 자본주의에 대한 고발장이다.

미국의 현실을 한국의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이 책은 던진다. 책을 번역한 박정은 이화여대 경영학부 교수 등은 '부유층에 감세 혜택을 주면 그 여력으로 투자와 소비가 활성화돼 경제가 살아난다'고 주장하는 현 정부의 정책을 직접적으로 비판한다.

그들은 "그 논리는 '부자들의 배를 불려주면 언젠가 물이 이래로 떨어져 가난한 사람들의 입을 적신다'고 한 트리클 다운(trickle-down) 이론(滴下理論ㆍ적하이론)에 충실할 뿐"이라며 "이 책이 미국의 정책을 좇고 있는 한국의 정책 입안자들을 위한 실사 보고서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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