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책과세상/ '소녀와 담배' 어린이 존중·흡연자 추방, 당연한 명제에 대한 도전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책과세상/ '소녀와 담배' 어린이 존중·흡연자 추방, 당연한 명제에 대한 도전

입력
2009.04.21 00:54
0 0

/브누아 뒤퇴르트르 지음ㆍ한지선 옮김/강 발행ㆍ236쪽ㆍ1만원

냉소와 위트가 결합된 시선으로 현대사회 이면의 모순을 폭로해 온 프랑스의 중견작가 브누아 뒤퇴르트르(49ㆍ사진). 그에게 '어린이 존중'과 '흡연자 추방'이라는 현대사회의 명제는 한번쯤 뒤집어 생각해볼 금기, 혹은 선입관이었던 것 같다.

그는 <소녀와 담배> 에서 두 사내의 운명을 조명하는 방식으로 이 단단한 금기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소설의 두 주인공 - 경찰관 살해죄로 사형 집행을 기다리는 가난한 흑인 사내와, 냉소적인 시청 고급공무원인 백인 사내 – 을 공통으로 묶을 수 있는 것은 오직 흡연자라는 사실뿐이다. 사내들의 운명이 엇갈리는 과정은 한 편의 소극 같다.

법에 보장된 흡연의 권리와 교도소 내 금연규정 사이의 모순을 파고들며 사형 직전 담배 피울 권리를 주장하는 흑인 사내의 대립은 법정까지 간다. 우여곡절 끝에 흡연 권리를 얻어낸 사내는 사형 집행을 중계하는 TV카메라 앞에서 꽃으로 '인생만세'라는 글자를 새긴 뒤 마지막 담배를 피움으로써 시청자들의 동정을 끌어내고 목숨을 구한다.

백인 사내의 몰락은 대조적이다. 그는 평소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독재권력을 행사하는 폭군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자동차 매연에는 관대하면서 흡연자들을 향해서는 비난의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을 냉소했던 인물. 다소 위악적인 마음으로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 한 소녀에게 발각된 그는 오히려 이를 따지는 소녀를 윽박지른다. 사내는 소녀의 부모로부터 아동추행죄로 고소당하고, 그의 인생은 그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

'어린이 존중'과 '흡연추방'이라는 명제는 이 소설의 무대인 프랑스뿐 아니라 어느덧 우리사회에도 완강한 당위 명제가 됐다. 그러나 흡연을 어른 되기, 즉 스스로 인생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와 등가로 보는 백인 사내의 주장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성년이란 우리들의 지평이자 이상향이었다. 유년 시절엔 엄격한 규칙들을 무조건 따라야 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길었던 그 세월 동안 우리는 출소를 기다리는 죄수들처럼 살았다"는 백인 사내의 고백은 함축적이다. 아이를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고, 금연 강요를 성인됨에 대한 억압으로 받아들이는 생각에 동의하건 않건 작가는 두 사내의 엇갈린 인생을 통해 금기와 억압에 대한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무릇 금기에 대한 도전은 문학의 오랜 특권이 아니었던가. 역자는 후기에서 "현대사회가 앓고 있는 심각한 자기기만과 위선의 병증을 충격적으로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썼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제보를 기다립니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에게 직접 제보하실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며, 진실한 취재로 보답하겠습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