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디 앨런이 감독과 주연을 했던 영화 ‘애니 홀(Annie Hall)’에 나오는 장면이다. 행복하게 손을 잡고 길을 걷는 한 커플에게 우디 앨런이 다가가서 당신들이 그토록 행복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 커플은 거침없이 이렇게 대답한다. "별거 없어요, 우린 그저 한없이 얄팍하고, 생각이라는 것은 일절 하질 않는 사람들이죠." 뭔가 일리가 있는 대사인 것 같기도 하다. 행복과 관련된 모순 중 하나는 자신은 늘 행복해지기를 원하면서도 막상 지나치게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이런저런 부정적 생각들을 떠올리게 된다는 점이다.
이 영화 장면처럼 너무 행복해 보이는 사람은 왠지 생각이 모자라고 철이 없어 보이기도 하고, 또 행복하다고 자칭하는 사람은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으로 비치기도 한다. 이처럼 행복한 사람에 대한 타인들의 느낌과 인상은 전적으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특히 동양 문화에서는 그렇다. 실제로 우리 연구실에서 모은 자료를 분석해보면 일본 사람들은 아주 행복한 사람을 볼 때 존경이나 호감보다는 이기심이나 얄팍함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을 더 많이 연상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흥미로운 점은 행복한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많은 국가일수록 그 나라 국민들의 평균 행복 수치가 낮다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부정적 편견은 편견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 행복의 경험 수준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내 모습을 못마땅하게 본다고 판단되면 행복의 추구와 표현을 아주 소극적으로 할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행복한 사람의 삶은 실제 어떤 모습일까. 일부 편견처럼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도 갖지 않고 자기에게만 몰두하는 이기적이고 생각이 짧은 부류의 인간들인가.
아니면 행복이라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진 사람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과 사회에까지 도움을 주면서 사는가. 이와 같이 행복감이 창출해내는 구체적인 삶의 결과물들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데 최근의 행복 연구들이 주력하고 있다.
연구의 결론은 일관된 것이다. 행복은 개인적 차원뿐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열매들을 양산한다는 것이다. 우선 행복한 사람은 마음뿐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더 건강하다. 미국의 보건학자인 대너(Danner)와 동료들이 인디애나 주의 작은 수녀원에서 발견된 자료를 분석한 유명한 연구가 있다.
연구진은 수녀들이 20대의 젊은 시절에 써놓은 짧은 글을 수집하여 그 글 속에 담긴 긍정적 정서의 양을 분석하였다. 기쁨이나 행복감이 많이 담긴 내용의 글을 쓴 수녀들이 있는 반면 긍정적 정서가 전혀 배어 있지 않은 글을 쓴 수녀들도 있었다.
1995년은 이 수녀들이 만 93세가 되는 해였다. 놀랍게도 70년 전 젊은 시절에 기쁨이나 행복감이 가득했던 글을 썼던 수녀들은 당시 긍정적 정서를 갖지 않았던 수녀들에 비해 93세까지 장수할 확률이 3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행복이 장수에 공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면역체계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같은 감기 바이러스에 노출되어도 행복한 사람은 행복감이 낮은 사람에 비해 감기에 덜 걸린다는 사실은 이미 학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행복감은 사회적 성공의 열쇠가 되기도 한다.
미국 유명 사립 대학생들의 삶을 장기적으로 추적한 자료에 의하면 대학시절 행복하고 쾌활한 성격을 보인 학생들이 그 당시 행복감이 낮았던 친구들보다 20년 후에 3만 달러 가량 더 높은 연봉을 받게 된다고 한다. 이유가 있다. 같은 직장에서도 행복한 근로자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생산성과 회사 기여도가 높은 반면 결근하거나 이직할 가능성은 낮다.
행복감이 높은 직장인은 그의 동료와 상관들로부터 능력 있다고 인정을 받을 뿐만 아니라 고객들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행복한 사람은 일에서 더 큰 능력을 발휘하며 이 긍정적 모습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행복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에 비해 질적, 양적으로 더 풍성한 대인관계를 유지하며 산다. 예를 들어 행복감을 많이 느끼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호감과 신뢰를 준다.
더 나아가 행복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관대하다. 행복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사회에 기부도 더 많이 하고 자원 봉사도 더 많이 한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 해결하는 능력에서도 행복한 사람들이 더 뛰어나다. 이 같은 사회적 장점들을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그를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난다.
행복감은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값진 자원 중 하나이다. 행복한 사람의 삶이 어떤가에 대한 질문에 최근 연구들은 명확한 답을 제시하고 있다. 행복의 기운은 개인의 건강이나 성취뿐 아니라 타인과 사회에 보탬이 되는 다양한 긍정적인 결과들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행복에 대한 우리의 평소 생각을 한 번 재구성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미래에 도달해야 하는 구체적인 목표 지점으로 설정하고 산다. 그러나 행복의 진가는 각자의 최종 목적지로 가는 여정을 보다 풍성하고 의미 있게 해주는 데 있다.
■ 과도한 행복/ '10점 만점에 10점' 되레 부작용…
최근의 연구들에 따르면 행복은 개인과 사회에 다양한 종류의 긍정적인 결과물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최근 일부 학자들은 극단적으로 높은 행복감(예를 들어 10점 만점의 행복 척도에서 9점 이상)은 개인에게 부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
어느 수준까지의 행복감은 좋지만, 행복감이 적정 수준을 넘기 시작하면 역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주장이다.
2007년 미국 버지니아 주립대학의 시게 오이시 교수와 동료들은 과도한 행복의 역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그들은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미국, 영국, 호주 등에서 실시한 대규모의 종단 조사 결과를 분석하였다.
종단 조사에서는 참여자의 행복과 같은 심리적 변인과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결혼, 이직, 출산과 같은 삶의 사건들을 여러 해 동안 반복하여 측정했다. 따라서 각 개인의 행복수치가 장기적으로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이해하는 데 아주 유용한 자료가 된다.
이 연구진의 예상대로 소득이나 교육 영역에서 최고의 성취를 하는 집단은 최상위 수준의 행복감을 경험하는 집단이 아니라, 상위 10~20% 정도로 '평균 이상'의 행복감을 경험하는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어 1979년 호주에서 1,000명이 넘는 18세 청소년들의 삶의 만족감을 측정한 뒤 1994년에 이들의 소득수준을 살펴보았다. 15년 뒤 가장 높은 소득 수준을 보여 준 집단은 5점 만점의 삶의 만족감 척도 조사에서 '5'라고 대답했던 사람들이 아니라 '4'라고 응답했던 사람들이었다.
미국, 독일, 영국의 조사에서도 유사한 결과가 나타난다. 지나친 자기만족감이나 행복은 개인적 발전을 저해하는 나태나 해이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행복은 많은 긍정적 열매를 낳지만 극단적인 경우는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필자는 위 연구를 발표한 오이시 교수와 최근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오이시 교수는 인터뷰를 통해 "각자에 맞는 적정 수준의 행복을 추구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2007년에 발표한 행복 연구의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특히 서구문화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것이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과도한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평균 이상의 적당한 행복감을 경험하는 사람들보다 교육이나 직업적 성취 면에서 뒤처집니다.
그러나 대인 관계 영역에서는 극단적인 행복감도 여전히 좋은 파장을 가져옵니다. 따라서 넓게 본다면 행복이라는 것이 인생의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래도 행복은 여전히 추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가요.
"물론이죠. 심지어 교육이나 소득 부분에서도 불행한 사람보다는 극단적으로 행복한 사람이 훨씬 좋은 결과들을 만들어 냅니다. 행복과 불행을 단적으로 비교하면 더 유익하고 좋은 결과는 거의 예외 없이 행복 쪽에서 나타납니다. 다만 어느 정도의 행복이 가장 이상적인가는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개인의 현명한 판단과 지혜가 요구되는 것입니다."
서은국 연세대 교수(심리학과)
일러스트=김경진기자 jinj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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