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 지음/민음사 발행ㆍ268쪽ㆍ1만1,000원
"나는 너를 만나서 좋았다. 좋다는 것은 행복하다는 것과는 다르지. 행복은 불행 속에 있을 수 없지만 좋다는 것은 불행 속에도 있으니까."(256쪽)
남과 북이 만나는 것은 좋은 일일까, 아닐까? 행복한 일일까, 불행한 일일까? 소설가이자 시인, 그리고 단편영화 감독이기도 한 이응준(39)씨의 장편소설 <국가의 사생활> 을 따라다니는 질문은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것은 언제라도 현실로 다가올 수 있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애써 눈을 감고 있는 물음이기도 하다. 국가의>
소설의 무대는 남북통일 후 5년이 지난 2016년의 서울이다. 그곳은 어떤 세상일까. 2011년 5월 대한민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흡수통일하면서 120만명이나 되는 인민군은 해체됐다. 엄청난 양의 재래식 무기들은 부엌 식기 없어지듯 사라졌고, 강제 전역당한 이들 대부분은 남쪽의 도시빈민으로 전락하거나 조직폭력배가 된다. 이남의 기업들과 부자들은 이북의 황폐한 땅을 사재기하겠다며 북으로 몰려가고, 한국전쟁 이전의 부동산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남 사람들의 소송이 줄을 잇는다.
이북 출신 난민들은 수십 곳의 게토에서 통일정부가 제공하는 하루 한 끼 식사로 연명하고, 이남 사람들의 심장만 파먹는다는 살인귀가 돌아다닌다는 유언비어까지 돌 정도로 민심은 흉흉해진다. 통일이 되면 남쪽 동포들이 구축해 놓은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해 그들과 같은 부를 누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이북 사람들에게도, 낭만적 동포애로 이북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으리라고 장담했던 이남 사람들에게도, 이쯤되면 통일한국은 끔찍한 디스토피아다.
인민군 출신으로 구성된 폭력조직인 '대동강' 내부에서 벌어지는 배신과 음모, 알력과 권력투쟁을 뼈대로 전개되는 이 소설은 통일한국에 대한 하나의 지옥도다. 반(反) 김정일 쿠데타에 가담, 요덕수용소에 끌려갔다 나왔으나 통일 후 탁월한 수완으로 재력가가 된 대동강의 보스 오남철, 혁명원로의 손자이자 엘리트 군인 출신으로 카리스마 넘치는 대동강의 2인자 리강, 별 볼 일 없는 출신이었으나 보스에 대한 충성심으로 조직의 3인자가 돼 사사건건 리강과 대립하는 조명도가 중심인물이다. 무자비한 폭력과 암살, 시신 소각까지 일삼는 대동강 단원들의 광기에 대한 묘사는 압권이다.
이북에서는 최고 출신성분의 최정예 전사였으나 통일 후 남쪽의 깡패로 전락, 마약에나 손을 대며 허무감을 달래는 리강은 작가 이씨가 특히 공을 들인 인물이다. 작가는 그를 "이미 죽었는데도 살아가고 있는", 혹은 "총이 있으면 길에서 스스로를 쏴버리고 말 것 같은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는" 인물로 묘사한다.
개인으로서는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거대한 역사의 전변(轉變) 앞에서 "네 운명의 주인은 너인가?"라고 되묻는 리강의 고뇌는, 남과 북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푸른 바다에 몸을 던졌던, 반세기 전 최인훈씨의 소설 <광장> 의 주인공 이명준의 그것과 닮아 있는 것도 같다. 광장>
<국가와 사생활> 은 이씨가 3년 동안 300권이 넘는 북한 관련 서적을 읽고 많은 탈북자들을 인터뷰해 일궈낸 가상 역사소설이다. 자칫 허무맹랑한 공상으로 빠지기 쉬운 장르이지만, 누아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긴박한 장면전환, 블랙코미디와 멜로, 우화 등의 요소를 적재적소에 버무려 한 순간도 책장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국가와>
사나이들의 폭력 장면을 묘사하면서도 "실패한 솜씨는 곡선을 그리며 어둠 속으로 되돌아갔다가 이내 새로운 솜씨가 되어 어둠으로부터 날아들었다. 리강은 리듬이 무너져 허우적댔다" 같은 감각적인 문장으로 형상화하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이왕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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