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만 달러의 지배자'는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였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씨 계좌로 송금했던 500만 달러에 대해 검찰이 "자금 조성과 흐름, 투자 전반에 걸쳐 건호씨가 지배력을 행사했다"고 밝히면서 '봉하마을'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자금 흐름은 다음과 같다. 2008년2월22일 박 회장은 홍콩 APC 계좌에 있던 500만 달러(당시 환율로 50억원)를 연씨의 미국 계좌로 송금했다. 이 중 300만 달러는 조세회피 지역인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엘리쉬&파트너스'에 투자됐다. 여기서 수십만 달러가 국내 업체 2곳으로 유입된 사실도 확인됐다. 당초 노 전 대통령측은 이 돈은 두 사람간의 개인 거래 자금일 뿐 노 전 대통령이나 건호씨와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 과정에서 해명의 진실성을 의심케 하는 정황들이 속속 포착됐다. 먼저 2007년12월과 2008년2월 건호씨가 연씨와 함께 베트남을 방문해 박 회장을 만났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500만 달러 요청 주체가 건호씨였거나 그가 최소한 송금 과정에 개입했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검찰은 곧 이어 건호씨가 엘리쉬&파트너스의 대주주였다는 사실이 기록된 서류를 입수했다. 건호씨가 자금 요청 뿐 아니라 투자 전반을 주도했다고 해석할 수 있는 결정적 정황이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측은 "건호씨가 장래를 고민하다가 이 업체 지분을 매입한 것은 맞지만 LG그룹에 계속 남기로 결정한 뒤 곧바로 매도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 해명은 엘리쉬&파트너스의 국내 투자 대상 2개 업체 중 한 곳이 권 여사의 동생 권기문씨 소유 업체라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빛이 바랬다. 설상가상으로 건호씨가 나머지 투자 대상 업체인 오르고스의 대주주였다는 정황이 추가로 포착되면서 노 전 대통령측 해명은 신뢰성에 큰 타격을 입게 됐다.
검찰은 이 같은 상황들을 종합해 건호씨가 500만 달러를 요구하고 사용한 '몸통'이라고 사실상 결론내렸다. 검찰 관계자가 17일 "자금 조성을 건호씨가 했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한 점이나 "건호씨가 500만 달러 자금 전반의 이동상황에 대해 상당한 지배력을 갖고 있었다고 보인다"라고 밝힌 것은 스스로의 결론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으로 풀이된다. 건호씨가 애초 "500만 달러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했다가 계속 진술을 번복하고 있다는 점도 검찰의 자신감을 배가시키는 요인이다.
그러나 아직 수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검찰의 목표는 건호씨가 아니라 노 전 대통령이다. 만일 건호씨가 돈을 요청해 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해도 노 전 대통령 처벌의 직접적 근거는 될 수 없다. 노 전 대통령이 이런 사실을 퇴임 전에 알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돼야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사전 인지 사실을 밝히지 못한다면 건호씨가 알선수재 혐의로 처벌받게 될 가능성도 있다. 시인하면 자신이 처벌받고, 부인하면 부인과 아들이 처벌받게 되는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이 어떤 결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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