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청와대에서는 국립 대한민국관 건립위원 간담회가 열렸다.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추진하는 국립 대한민국관은 문화부 청사를 리모델링해 2014년 개관할 예정이다. 원래 구상은 현대사박물관이었으나 보수 진보의 이념 대립을 우려해 미래지향적 전시관으로 바꿨다고 한다.
들러리 세우는 정부 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된 한 원로교수는 그 명칭이 뭘 지향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했다. 그런 명칭이라면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자 공무원들은 "확정된 게 아니고 가칭일 뿐입니다"라고 둘러대더니 어느새 그 명칭으로 확정해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다 정해 놓고 들러리만 서게 한 셈이었다.
나는 정부의 어느 위원회에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회의 개최 1주일 전에 통지메일을 보내왔기에 선약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바로 답신을 보냈다. 수신확인을 해 보니 이틀이 지나서야 메일을 읽을 만큼 관계자는 느슨했다. 그리고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두 번이나 전화를 걸어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는 이유를 다른 사람에게 간접 문의했다고 한다.
드디어 나와 통화가 됐을 때 "왜 좀 일찍 알려주지 그랬느냐"고 하자, 그는 "규정에 1주일 전에만 통보하면 되게 돼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더니, 이미 충분히 기분이 상해 있는 나에게 불참사유를 다시 물었다. "아니, 그것까지 대란 말이오?"하자 그는 어물어물 전화를 끊었다. 그 동안 정부나 민간의 여러 위원회에 참여했지만 불참사유를 대라는 곳은 처음 봤다. 보나마나 높은 분에게 보고하려고 한 짓이겠지.
그 위원회는 한 달이 넘은 지금까지도 내가 불참한 회의에서 결정한 사항이 무엇인지 알려 주지 않고 있다. 또 다른 위원회 관계자는 첫 회의를 소집할 때 '임철순 논설위원'이라고 메일을 보내왔다. 논설위원이라고 하지 말고 주필이라고 부르라고 알려 주었더니 주필이 뭔지 몰라 실례했다고 답을 보내왔다. 작년엔 청와대 직원 하나도 나와 통화를 하면서 "신문사에 주필이 있는 줄 몰랐다"는 말을 했었다. 그곳에서 보내는 우편물에는 내 이름이 '임철승'으로 적혀 있다.
나를 알아 달라거나 대접해 달라는 뜻이 아니다. 상대가 누구든 그 사람과 접촉을 하려면 직함과 개인 정보를 확실하게 파악하는 게 기본 아닌가. 그런데 시쳇말로 개념이 없는 공무원들이 너무도 많다. 통화상대가 자기보다 선배인데도 비서를 시켜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도 많다. 그런 경우 나는 대부분 전화를 끊어 버린다. 저는 손가락이 없나,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어느 광역시의 시장이 나를 찾아온 일이 있다. 그 시의 서울사무소장은 엄청 바빠졌다. 전화를 다섯 번은 한 것 같다. 사무실 위치도 나에게 직접 묻고, 자기가 미리 둘러봐도 되겠느냐 그러더니, 당일에는 시장님이 지금 어디쯤 가고 계시다, 자리 뜨지 말고 기다려 달라 이런 말을 하느라 전화를 걸어왔다. 불쑥불쑥 휴대폰 전화를 거는 것이 사실은 실례라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사무실에 와서는 시장과 내가 나누는 대화가 땅바닥에 떨어질세라 수첩에 기록하기 바빴다. 자기에게는 시장이 하늘이고, 시장의 신문사 주필 방문이 큰 행사이겠지만 그의 행태가 우습고 오히려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요즘 정부가 하는 일은 왜 이렇게 갈팡질팡인가. 대표적인 사례가 노후차량 교체 지원제도와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 폐지안이다. 부처간 당정간에 손발이 맞지 않고 일의 순서가 뒤틀려 혼선을 빚다 보니 정부 스스로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기본이 안 갖춰진 공직자들
견해가 다르다면 정책 수립 전에 충분한 토론을 거쳐 추진 여부를 결정하고, 일단 결정한 정책은 그 성공과 정착을 위해 범 정부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지 못한 것은 일을 하는 방식이 치밀하지 못하고 허술하고 성글기 때문이다. 최근의 정부 행태를 보면서 기본이 안 갖춰진 공무원들을 저절로 생각하게 됐다. 그런 아마추어 같은 태도는 노무현 정부 때나 지금 정부나 똑 같다.
임철순 주필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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