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는 또 다른 크고 작은 반도들이 달려 있다. 이중 전남 무안에 있는 해제반도에 다녀왔다. 지도를 펼쳐 놓고 해제반도를 찾아보면 그 모양이 특이하다. 실타래처럼 가늘게 뻗은 줄기 끝에 뭉툭한 땅덩어리가 매달려 있다.
5만분의 1 축적 이상의 상세지도가 아닌 다음에야 지도에서 보이는 반도의 가는 줄기는 일반도로의 길로만 표시된다. 그래서 이곳을 잘 모르는 이들은 해제를 주변 다도해 섬들처럼 연륙교로 연결된 하나의 섬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해마같기도 하고 사슴뿔 모양으로도 보이는 해제반도는 또한 여러 줄기의 긴 곶을 바다에 뻗고, 그 사이사이에 바다를 품고 있다. 사방이 바다인 섬보다 훨씬 더 많은 바다를 품고 있는 땅이다.
완연한 봄이 내려앉은 해제의 첫머리는 지금 왕벚꽃으로 찬란하다. 무안군 현경면의 송정리를 거쳐 용정리로 내닫는 길. 톡 치면 끊어질 듯한 좁은 길목은 양쪽에 바다를 끼고 있다.
바다가 성이라도 나면 이쪽 바다에서 쳐올린 파도가 저쪽 바다로 떨어질 것만 같다. 그 길가에 길게 늘어선 벚나무들이 팝콘처럼 하얀 꽃망울을 터뜨려 꽃잎을 흩날리고 있다. 오른편은 함평만, 왼편은 탄도만의 바다를 끼고 달리는 차창 밖은 눈부신 꽃폭죽이 한창이다.
그 희디 흰 꽃잎을 더욱 눈부시게 하는 건 무안의 붉은 황토밭과 초록빛 양파밭 능선이다. 푸른 하늘과 뭉게구름, 화사한 꽃길과 찰진 갯벌, 붉은 황토와 초록으로 넘실대는 구릉의 대비. 완벽한 봄빛 오케스트라다.
봄의 기운으로 나른한 해제의 땅은 전체가 완만한 구릉으로 이어져 있다. 높은 산이 없고 반듯한 들판도 없는 비산비야의 땅이다. 부드러운 곡선의 구릉은 여러 겹의 파도처럼 겹치고 또 겹쳐 흐르다 바다로 미끄러진다.
이제 막 트랙터가 일궈낸 황토밭은 그야말로 핏빛이다. 그 옆의 푸른 것들은 양파나 마늘. 양파는 무안의 대표작물이다. 전국 생산량의 약 20% 가까이가 무안의 황토밭에서 난다.
처음 찾는 해제의 땅이건만 마치 먼 기억 속의 고향에 온 듯 따뜻한 정감이 느껴지는 건 해제를 감싸고 있는 곡선 때문이다. 해제에선 날카로운 직선을 찾아보기 힘들다.
황토의 붉음과 봄 작물의 초록이 퀼트처럼 꿰이고 어우러진 구릉뿐이 아니다. 구릉을 가로지르는 밭두렁과 농로도 구릉의 곡선만큼이나 편안히 휘어져 무늬를 넣는다. 구불구불한 해안과 그 해안을 따라 난 찻길의 곡선도 봄볕만큼이나 부드럽다.
해제 해안길의 최고는 수암사거리에서 도리포까지 이르는 7,8km 되는 해안도로다. 길은 구릉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해안을 따라 이리 휘고 저리 휘며 봄빛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그 길을 달리며 내내 눈이 부신 건 청정 함평만 갯벌에 난반사된 햇빛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바다를 끼고 낮은 구릉을 타고 이어지는 소박하고 편안한 이 길이 주는 아름다움에 홀딱 반한 마음이 무장해제되며 동공마저 활짝 열어 놓았나 보다.
길 끝의 도리포는 함평만과 칠산바다의 경계다. 두 바다를 잇는 곳이라 유속이 거세다. 포구 방파제 끝에 서니 급하게 휘돌아 흐르는 물살이 눈에 명확히 들어온다. 이 센 물살 속에서 나는 민어나 숭어 등 커다란 생선이 도리포의 특산물이다. 함평만 찰진 갯벌의 영양분으로 살찌우고, 거센 물살로 단련된 최고급의 생선들이다.
도리포 앞 바다에선 1995년 600여점의 고려청자가 인양됐다. 해제반도가 얼마나 크게 휘돌아 튀어나왔는지 반도가 감싼 해제반도의 저쪽 끝, 함평만 건너의 뭍이 보이질 않는다.
도리포에선 이 수평선 너머로 뜨는 일출을 볼 수 있다. 당진의 왜목, 서천의 마량과 함께 서해에서 수평선의 일출 일몰을 같이 볼 수 있는 특이한 곳이다. 해넘이는 도리포 마을 작은 언덕을 넘어 송계마을에서 볼 수 있다. 칠산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이 장엄하다.
송계마을에서 해제면사무소가 있는 양간리로 가다 보면 커다란 염전을 지난다. 벌써 봄볕이 여물었는지 염전에선 알알이 돋은 소금 결정을 모으기 위해 대파질을 하는 염부들의 손놀림이 분주하다.
양간리에서 가까운 봉대산은 해제에서 가장 큰 봉우리다. 비록 높이(192m)는 대단치 않지만 주변에 시야를 가리는 게 없어 해제 최고의 전망대 역할을 하고 있다.
산꼭대기까지 길이 놓여 있어 차로도 오를 수 있지만 산길에 가득한 벚꽃에 취하며 걸어 오르는 게 더욱 운치있다. 정상에 서면 해무로 아련한 칠산 바다와 해제 구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해제의 아름다운 곡선의 향연에 흠뻑 빠져들게 된다.
무안=글·사진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 무안 해제반도 한옥펜션서 봄잠 깨운 '참새 모닝콜'
무안의 해제반도는 바로 옆 신안군의 지도 임자도 증도 등의 섬마을을 잇는 길목이기도 하다.
태평염전과 엘도라도 리조트가 있는 증도로 가는 길. 해제면 창매리에 근사한 한옥펜션이 있다. 무안에 들어선 숙박시설치곤 꽤 크게 조성된 '참새골한옥펜션'이다.
12만㎡의 너른 부지에 자리잡은 펜션은 모두 1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최옥수(46) 사장이 직접 설계하고, 자신이 고안해 제작한 황토벽돌로 쌓아 올려 만든 집들이다. 고색창연한 전통 한옥 스타일이 아니라 외관은 조금 투박하다.
최 사장은 "우리네 옛집이 그러했듯 사람이 편안히 지낼 수 있는 편의성에 충실해 집을 지었다"고 했다. 멋보다는 실용을 중시해 지은 집이다. 황토 흙바닥에 누워 황토벽돌이 숨쉬는 공기를 마시며 땅의 기운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주변에 별다른 시설물이 없어 한없이 조용히 쉴 수 있다. 창문을 열고 앉아 있으면 참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온다. 동네 이름에 맞게 이곳에는 유독 참새가 많다. 동백나무에도, 기와지붕 처마에도 떼를 지어 종종거리는 참새들을 볼 수 있다.
투숙객들은 바로 앞 바다에서 바지락 캐기, 낙지 잡기 등 다양한 갯벌 체험을 할 수 있다. 바닷물을 끌어들인 숭어잡이 체험장에선 팔뚝만한 고기를 맨손으로 잡아볼 수도 있다. (061)453-3645
무안=글·사진 이성원기자
■ 여행수첩/ 무안 해제반도
●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다 무안 못 미쳐 함평JC에서 광주ㆍ무안 고속도로로 갈아타 무안국제공항 방향으로 향한다. 북무안 IC에서 빠져 나와 현경면사무소 소재지를 지나 24번 국도의 지도, 해제 방면으로 향하면 왕벚꽃 길을 지나 해제면에 이른다.
● 무안의 바다 생선은 철마다 맛이 다르다. 겨울에 숭어가 유명하다면 여름은 민어, 가을은 세발낙지가 주인공이다. 봄인 지금은 주꾸미와 갑오징어가 최고 진미.
● 무안 사람들이 '각석'이라 부르는 갑오징어는 이제 나기 시작해 내달 초까지만 모습을 드러낸다. 동해서 잡히는 일반 오징어에 비해 육질이 훨씬 부드럽다. 무안 뻘에선 낙지도 많이 건져 올리지만 봄엔 주꾸미가 제철이다.
● 무안 5일장 초입에 있는 '월두수산(061-453-1480)'이 갑오징어와 주꾸미 요리를 잘한다. 요즘 시세는 갑오징어 회 한 접시에 3만원, 주꾸미 볶음 4인분에 3만원이다. 국물로 나오는 곰방불나물국은 쑥국보다도 시원하게 속을 풀어준다.
● 무안 읍내에는 낙지골목이 조성돼 있어 기절낙지, 탕탕이 등 다양한 낙지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무안군관광안내소 (061)453-1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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