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참여정부 청와대 핵심 비서관 출신 A씨가 추정한 '100만 달러의 실체'는 그의 직접적인 경험들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서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지만 그의 설명은 자금의 사용처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인 추론을 하고 있다는 것 말고는 대체로 노 전 대통령 측의 해명과 같은 취지라는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한 의도된 해명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A씨에 따르면 문제의 발단은 2006년 상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LG전자에 근무 중이던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는 미국 유학을 원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 주변에서는 반대가 많았다고 한다. 이 때 건호씨 편을 든 것이 어머니 권양숙 여사였다. 결국 건호씨는 그 해 6월 LG전자에 무급 휴직원을 제출했다. 9월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경영학석사(MBA) 과정에 입학이 확정됐기 때문이다.
아들의 유학을 적극 밀어주던 권 여사는 유학자금 마련도 거의 혼자 도맡았다고 한다. 남편과 상의 없이 누군가에게 돈을 빌려 건호씨의 유학비와 생활비를 제공했다. 권 여사는 이 돈을 갚기 위해 1년 후인 2007년 6월께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박 회장에게 급하게 100만 달러 마련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은 돈을 빌린 것부터 박 회장의 돈을 받아 채무를 갚는 과정을 알지 못했을 수 있다고 A씨는 추정했다.
A씨는 "노 전 대통령이 퇴임을 앞두고 있어서 퇴임 이후에는 누구도 돈 갔다 주는 사람 없을 것 같아서 권 여사가 무리했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권 여사가 채권자를 공개하지 못하는 것은 돈을 빌려준 사람이 난처한 입장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뒤따랐다.
그러나 이 같은 설명도 의문을 명쾌하게 풀어주지는 못한다. 우선 빚을 갚기 위해서라면 무리하게 현금을, 그것도 달러화로 청와대에서 받을 이유가 있었느냐는 의문에 대해 답을 주지 못한다. 박 회장에게 바로 채무자의 빚을 갚도록 하는 방법이 오히려 간단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을 앞둔 상황에서 그 전날 허겁지겁 돈을 받았다는 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국내에서 갚아야 할 채무라면 번거로운 출국 전날 굳이 돈을 받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때문에 전용기로 100만 달러를 가지고 나가 건호씨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을 해소할 순 없다.
미국에서 건호씨를 경호했던 청와대 경무관은 "노 전 대통령이 IOC 총회 참석을 위해 시애틀을 경유했을 때 건호씨를 만난 적이 있느냐"는 검찰 질문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애매한 답변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검찰과 노 전 대통령측 양쪽 다 속시원한 증거를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사용처를 둘러싼 진실게임은 권 여사가 채무자를 공개하지 않는 한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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