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신뢰도를 회복하라.
요즘 백화점 업계에 내려진 특명이다. 제 아무리 화려한 시설로 치장하고, 최상급의 서비스를 제공한들 가격 자체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면 그야말로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백화점에서 가격불신의 불씨를 지핀 것은 남성 정장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남성 정장 협력업체들이 정상가격을 높게 책정한 뒤 세일기간에 상관없이 깎아주는 정책을 쓰고 있다. 소비자들은 당연히 의류에 표시된 정상가격에 의구심을 가지게 됐고, 남성 정장은 항상 정상가보다 할인된 가격에 구입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문제는 소비자의 의혹의 눈길이 백화점의 다른 제품에까지 미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백화점에서 남성 정장을 철수시킬 수는 없는 일.
이런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 롯데백화점은 2007년 가을부터 기존에 비해 30% 저렴한 가격을 정상가로 책정하는 '그린 프라이스' 제도를 도입했다. 애초에 합리적인 가격을 받고, 연중무휴로 실시하던 할인판매 관행을 없애겠다는 취지였다. 협력업체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협력업체들은 이미 소비자들 사이에는 '정장을 제값 주고 사면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한 만큼, 현실화한 가격조차 믿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로 버텼다.
하지만 롯데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다. 이철우 사장이 직접 나서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에게 정책의 취지를 설명하고 나섰다. 결국 소비자들도 정상가격 자체가 저렴해졌다는 사실에 동감했고, 정해진 세일기간(1, 7월)이 아니면 할인이 없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롯데백화점의 '그린 프라이스'제도는 동종업계도 반기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관계자는 "비정상적인 가격을 바로잡겠다는 취지에 적극 공감한다"고 말했고,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업계의 오랜 관행을 쉽게 깨지 못하고 있던 차에, 롯데백화점이 나서면서, 정찰제 가격이 많이 정착되고 있다"고 전했다.
롯데백화점 이원준 상품본부장은 "그린프라이스 제도 도입으로 정상 상품 매출이 늘면서 업체로서는 재고 비용 부담을 덜 수 있고, 소비자는 최신 상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다"며 "결국 고객들의 신뢰도를 높이고, 장기적으로는 소비자와 업체 백화점 모두 윈윈하는 제도인 만큼 완전히 정착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창만 기자 cm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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