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오바마의 햇볕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오바마의 햇볕

입력
2009.04.17 00:54
0 0

미국은 1962년 2월 7일 쿠바에 대해 포괄적인 금수(禁輸) 조치를 단행한 이래 민주당, 공화당 정부 가리지 않고 일관되게 경제봉쇄를 유지해 왔다. 주민을 억압하는 반미 공산정권을 압박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애꿎은 주민들만 더 힘들게 했을 뿐 카스트로 정권의 붕괴나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미국은 외교적으로도 쿠바를 고립시키기 위해 노력을 쏟았지만 오히려 미국 스스로의 고립만 초래했다. 1992년부터 유엔총회의 연례행사가 된 쿠바경제봉쇄 해제 결의안 채택은 늘 찬성이 압도적이다. 190여개 회원국 중 반대는 미국과 이스라엘, 그리고 남태평양 한 두 나라 뿐이다.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엊그제 47년이나 묵은 쿠바 경제봉쇄정책의 축을 허무는 조치를 단행했다. 150만 쿠바계 미국인들의 고국 방문과 송금 제한 조치를 전면 해제했고, 미국 통신사들이 쿠바 내에서 인터넷 이동통신 위성방송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길도 열었다. 후보 시절 "쿠바계 미국인들이야말로 쿠바에 자유를 전할 사절로서 최적임자"라고 말한 오바마다. 쿠바계 미국인들의 자유왕래와 송금을 통해 쿠바에 자유의 바람을 확산시키고 체제를 변화시키겠다는 오바마 판 햇볕정책이 바야흐로 실행에 들어간 셈이다.

▦ 금수조치와 일반인들의 여행 제한 해제까지는 아직 멀지만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수십년 만의 변화'니 '역사적'이니 하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쿠바 주민들은 당연히 환영이고, 외부 공기유입에 부담을 느낄 법한 쿠바 당국의 반응도 그리 나쁘지 않다. 건강 악화로 동생 라울 카스트로에게 권좌를 넘긴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의장은 "최소한의 규모지만 긍정적"이라고 평했다. 그러나 "금수조치에 한마디 말도 없다는 것은 잔인하다"고 꼬집었다. 반세기에 걸쳐 자신을 압박했던 미국에 대한 구원(舊怨)을 잊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 미국 내 보수진영과 쿠바계 정치인들은 제재 완화가 카스트로 정권의 입지만 강화시켜줄 뿐이라고 비판한다. 실제로 쿠바계 미국인들의 자유왕래가 쿠바체제의 변화로 이어질지, 체제 동요를 막기 위한 새로운 억압을 초래할지는 기다려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선 쿠바를 향한 오바마의 햇볕정책은 이제 막 시작된 실험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그 어떤 경제제재도 주민들만 힘들게 했을 뿐 독재정권 자체에 타격을 주지 못했던 만큼 오바마의 실험에 거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북한이 오바마의 햇볕에 노출될 기회 자체를 거부하는 것도 자신이 없는 탓인지도 모른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