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제반도 중간쯤 함평만으로 툭 튀어나간 땅의 끝 자락에 달머리란 이름의 아름다운 갯마을이 있다. 무안군 현경면의 용정리 월두마을이다.
동쪽이나 서쪽 어디서 보나 오목하게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 풍경이 초승달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이 끼고 있는 함평만 갯벌은 우리나라 최초로 갯벌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으로 지난해에는 람사르 습지에도 이름을 올린 청정한 뻘이다.
해제반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이 곳은 사철 봄이고 사철 푸른 갯마을이다. 어느 때고 고운 풍경이지만 물이 빠져 갯벌이 얼굴을 내보일 때 마을의 진가는 유감없이 드러난다.
마을의 너른 갯벌은 잔디밭처럼 초록 융단을 덮고 있다. 정식 명칭은 가시파래, 호남 주민들은 감태라 부르는 해초다. 매생이보다 굵고 파래보다는 가는 실타래 같은 바다풀이다.
김이나 파래 등은 수면에서 자라지만 감태는 갯벌에 뿌리를 내린다. 감태무침은 무안 등 전남의 많은 집에서 밑반찬으로 빼놓지 않고 밥상에 올리는 별미 음식이다.
감태는 겨울이 제철이다. 찬바람 불 때 갯벌을 뒤덮기 시작해 가장 추울 때 가장 싱싱한 초록을 내뿜는다. 찬 겨울 월두마을 아낙들은 질퍽거리는 갯벌 위를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감태를 뜯어낸다.
갯벌은 그 입자가 너무 고와 쑥쑥 몸을 빨아들인다. 처음 접한 이들은 허벅지까지 빠지는 뻘에서 오도가도 못해 울상을 짓기 일쑤이지만 이 갯벌에 이골이 난 아낙들은 물 위를 걷듯 갯벌 위에 완벽한 균형으로 올라타고 감태를 채취한다.
감태 수확은 이른 봄에 끝이 난다. 지금은 거두질 않는다. 날이 따뜻해지면 감태가 줄거니와 맛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감태는 조만간 사그라들고 대신 싱경이라 부르는 납작파래가 여름 내내 갯벌 위에 초록을 대신할 것이다.
마을 왼편 바닷가에는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딱 보기에도 영험스럽다. 도 기념물로 지정된 곰솔이다. 나무 높이는 14m. 350년을 해풍을 견디며 자라온 노송이다. 월두마을 주민은 이 나무를 할아버지 당산나무라 부르며 귀하게 여긴다.
마을 끝 모래밭 건너편에 있는 섬은 도당도다. 물이 빠지면 길이 열린다. 섬 주변은 마을 어촌계에서 바지락 양식장으로 운영하는 곳이다. 물 빠진 시간에 맞춰 도당섬으로 건너갔다.
정오의 햇살이 수직으로 떨어져 하얀 모래사장이 눈부시게 빛난다. 갯바위를 돌아 나가자 큰 챙모자를 쓴 어르신이나 수건으로 얼굴을 칭칭 휘감은 아주머니들이 열심히 뻘을 뒤적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굴을 캐고 낙지를 잡는 것이다. 따뜻한 봄볕을 받으며 갯바위에 옹기종기 앉아 톡톡 굴 껍질을 까는 분들도 여럿이다.
뻘 위를 스치듯 날아오른 물새는 건너편 봉긋 솟은 대섬을 한바퀴 휘휘 돌며 눈을 즐겁게 한다. 사방 모든 곳이 완벽한 풍경이다. 해제반도 함평만 아름다움의 진액이 모두 이곳에 모여 있는 듯하다.
굴 한 점 먹어보라고 내주는 인심 좋은 할머니께 "마을 참 예쁘네요" 했더니 "참 좋지라" 하며 씩 웃으신다. 할머니의 주름진 입가에 새겨진 미소에도 월두마을의 초록이 담겨 있다.
월두마을이 있는 용정리는 '팔방미인마을'이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월두를 비롯해 수양촌 석북 두동 신촌 용정 성재동 봉오제 등 아름다운 마을 8개로 이뤄져 있다. 농어촌 체험이 가능한 정보화마을로 지정된 팔방미인마을에선 양파 캐기, 낙지 잡기, 바지락 캐기, 고구마 심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 있다. 8bang.invil.org 마을정보센터 (061)453-5669
무안=글·사진 이성원 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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