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해질 때까지 무한 반복이에요. 그럼 흔들리지 않아요."
15일 오후 9시 경기 안성시 보개면 복평리 안성 남사당전수관. 어스름 불빛과 함께 새 나오는 사물놀이 장단이 깜깜한 계곡에 조용히 퍼져 나갔다.
문을 열자 18일부터 안성 남사당 바우덕이풍물단 토요상설공연에 나서는 여고생 어름사니(줄꾼) 서주향(17ㆍ안성종고2)양이 구슬땀을 흘리면서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황새두렁넘기(줄 위에서 무릎으로 종종 걷기)를 하다 잠깐 줄이 흔들리자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10년차 어름사니지만 집중력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곧장 실수로 연결된다. 그래서 긴장의 연속이다.
재담 연습 때는 외운 내용이 떠오르지 않아 스승으로부터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외울 게 많은 고등학생이다 보니 재담 외우기가 쉽지 않다.
서 양은 "정규 수업을 다 마치고 훈련해야 해 이렇게 밤 늦게야 연습한다"면서 "남보다 배는 힘들지만 남이 못하는 것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어려움을 이겨낸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서 양이 이 곳과 인연을 맺은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인 1999년. 당시 바우덕이 풍물단원이었던 최순칠 옹이 동네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하던 서 양을 눈 여겨 보면서부터다.
최 옹의 손에 이끌려 안성 시내에서 열린 한 공연장까지 엉겁결에 따라 나선 서 양은 첫날 색동옷을 차려 입고 탈춤까지 췄다고 했다.
"마침 춤을 추면서 흥을 돋울 사람이 모자랐나 봐요. 무대 뒤에서 쭈뼛쭈뼛 서 있자니 한 풍물패 단원이 '어서 한복 입고 나가 보라'고 등을 떠미셨어요."
덩실덩실 내젓는 7살 꼬마의 손짓 발짓에 구경꾼들도 장단을 맞췄다. 공연 후에는 출연료 명목으로 만원짜리 지폐도 한 장 받았다.
이후 서 양은 풍물단 공연을 따라 다니면서 '무동타기' '흥 돋우기'로 관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끼를 인정 받은 서 양은 1년 만에 줄타기 연습에 나서 현재 민속촌 줄타기 명인인 홍기철 선생에게 3년 정도 사사했다.
서 양은 처음 줄을 탔던 때를 잊지 못한다. "줄에 올라가 보라고 해서 뭣도 모르고 올라갔었는데 의외로 중심이 잘 잡히더라고요."
막내딸이 남사당이 된다는 걸 극력 반대하던 부모들도 서 양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나중에는 "꼭 줄타기 명인이 돼라"면서 격려해줬다.
그렇게 지름 2㎝ 가량의 줄에 몸을 맡긴 채 학교도, 친구도 잊고 살아온 서 양에게 요즘 중대한 고비가 찾아왔다.
체중이 는 것도 아닌데 굳은 살이 손과 발에 붙기 시작했고 가랑이도 자주 짓무른다고 했다. 특기였던 거중돌기(가랑이로 줄을 탄 뒤 그 탄력으로 방향을 바꿔 앉는 동작)도 요즘 따라 어렵고 어색하게 느껴진다고 했다. 17살 늦은 나이에 사춘기가 온 것이다.
"그 동안 정말 줄만 바라보고 왔거든요. 근데 왜 줄타기를 해야 하는지 이제 의문이 많이 들어요. 사춘기가 오려나 봐요."
서 양은 그 때마다 줄타기 명인으로 거듭날 미래를 꿈꾸며 이겨낸다고 했다. "잠시라도 쉬면 감을 잃고 이제껏 노력도 물거품이 된다"고 격려한 스승의 정성도 위기를 넘기는데 도움이 됐다.
서 양은 또 대학진학을 위해 지난해에는 한 달간 미국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왔다. 외국 공연 때 통역 없이 말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안성시가 연수비를 보조했다.
스승 이상철씨는 "줄꾼은 타고난 재능도 중요하지만 꾸준한 연습을 통해 감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그런 면에서 서 양은 줄타기 자체를 즐기는 성실함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요즘 동방신기와 빅뱅이 좋다는 서 양은 "풍물인들의 눈에도 인정 받을 수 있는 나만의 공연을 대중들에게 선사하고 싶다"면서 "주말부터 시작하는 바우덕이 토요상설공연에 많이 찾아와 박수도 쳐 주고 격려도 해달라"며 활짝 웃었다.
서 양은 오후 7시께 시작한 연습을 밤 12시가 다 돼서야 끝냈다.
글·사진=강주형 기자 cub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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