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태국 시위가 일단락됐다. '아세안+3(한국ㆍ중국ㆍ일본)' 정상회의와 동아시아정상회의를 무산시킬 만큼 이번 시위는 큰 위력을 발휘했다. 시위대는 태국군의 진압작전에 밀려 자진 해산을 선언하면서도 "우리는 패배한 것이 아니다"고 강조함으로써 언제든 다시 일어서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시위의 한 가운데 있는 인물이 탁신 친나왓 전 총리다. 2001년 총선에서 승리, 총리가 된 그는 재임기간 동안 고도 성장을 이루고 공짜에 가까운 의료, 교육 정책을 펴 서민과 농민의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왕도, 군부도 그런 그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그를 인기주의자로, 부패 정치인으로 몰았는데 물론 탁신을 그렇게 볼 이유는 있었다. 그러다 2006년 9월 군부는 결국 쿠데타를 통해 탁신을 쫓아냈다.
반 탁신 시위대가 방콕의 국제공항을 점거, 외국인 관광객의 발을 묶어가며 극렬 시위를 한 끝에 지난해 12월 탁신의 매제 솜차이 옹사왓이 총리에서 물러나고 반 탁신 세력에게 권력이 돌아갔다. 이렇듯 최근 몇 년 동안 태국 정국은 친 탁신 세력과 반 탁신 세력의 권력 싸움으로 전개됐다.
그렇지만 태국 사태를 여러 정치 세력이 권력을 놓고 경쟁하는 일반적인 형태의 정치 다툼으로 보는 것은 너무 단편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시위를 대중민주주의와 엘리트주의의 대립으로 해석했다. 농민, 서민 등으로 구성된 시위대가, 국정을 주도하는 도시 중산층 중심의 정치 엘리트에게 평등과 민주주의를 요구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태국은 지금 대중민주주의 국가로 가느냐, 엘리트주의 국가로 남느냐는 기로에 서있다는 것이 파이낸셜타임스의 견해다.
여기에서 말하는 농민, 서민은 바로 탁신의 지지 세력이다. 도시 중산층은 부유층, 군 등과 함께 반 탁신 성향 현 집권 세력의 주요 지지 기반이다. 두 세력은 각각 빨간색, 노란색을 상징 색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두 색상의 차이만큼이나 사회경제적, 지역적 차이가 크다.
이 같은 계층별, 지역별 차이가 좁혀지지 않는 한 상대를 향한 도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태국이 정치적 안정을 찾으려면 도시-농촌, 중산층-빈민 등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필수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이번 시위는 권력뿐 아니라 돈과 특권의 배분에 관한 것"이라며 "도시 엘리트와 농촌 및 도시 빈민의 소득격차를 줄이지 않는 한 충돌은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전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정치권이 그 차이를 해소할 의지도 없고 방법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같은 격차를 줄이기 위해 특별한 대책을 내놓은 정치 집단을 보지 못했다. 태국에서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왕도 이렇다 할 의견이 없다.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면 현실의 여러 정치 세력이 대타협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그 역시 어려워 보인다. 태국 언론이 정부가 비상사태를 해제하면 시위대가 다시 거리로 나와 시위, 농성을 재개할 것으로 전망하는 것을 보면 그런 기대를 섣불리 하기가 어렵다.
선거로 들어선 정부를 뒤집는 악순환이 계속되면서 태국은 이미 적지 않은 피해를 보았다. 경제적 손해도 크지만 웃으며 외부인을 맞던 관광대국의 따뜻한 이미지도 퇴색했다. 태국 정치가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것이 안타깝다.
박광희 국제부장 직대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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