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지평선] 참외 이야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지평선] 참외 이야기

입력
2009.04.15 23:57
0 0

외딴 섬에서 자란 나는 뭍으로 나온 초등학교 2학년 때 참외를 처음 보았다. 달콤한 냄새에 끌려 동생과 함께 참외가게 앞을 맴돌았다. 그걸 본 할머니께서 사주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할머니는 트집만 잡으시고 옆 가게로, 또 옆 가게로 옮겨 다니셨다. 군침은 돌고 다리는 아픈데 멀리 청과물시장까지 가야 했다. 한여름 땡볕 속에 한나절을 고생한 뒤 우리는 참외 하나씩 손에 쥐었다. 그날 저녁 할머니께서 어머니에게 말하는 것을 엿듣게 됐다. "하나씩 사 주려니 돈이 모자라서…, 참외 하나 얻어먹으려고 도매상까지 따라다니느라 애들이 고생 많았다."

▦그저께 서울 청계광장에서 '참외 축제'가 열렸다는 소식을 뒤늦게 접하고 돌아가신 할머니를 생각했다.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안겨준 과일이었기에, 미리 알았으면 가 보았을 것이란 후회로 많이 아쉬웠다. 한편으로는 놀랐다. 수박과 함께 한여름을 상징하는 과일인데 4월 중순에 웬 축제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요즘 참외가 많이 눈에 띈다. 원래 7~8월 뙤약볕 속에 나오는 법인데, 지금부터 5월 중순까지가 '참외의 계절'이 됐다. 비닐하우스 덕분이겠지만 한여름엔 일조량이 적어 '봄 참외'가 '여름 참외'보다 오히려 생산량이 많다고 한다.

▦참외가 우리나라 고유의 과일이라면 다소 의외로 들릴 터이다. 영어로 흔히 'melon'이라고 한다지만 정확한 명칭은 'oriental melon(동양멜론)'이다. 오래 전부터 중국 동북부지방과 한반도, 일본에서만 재배되었기에 독자적 영어명칭이 없는 과일이다. 한자어와 한글의 독립된 이름은 있다. 삼국시대나 고려시대부터 오이(瓜) 종류 가운데 단맛(甛ㆍ첨)이 많다 하여 '첨과(甛瓜)'로, '진정한 오이'라는 의미로 '진과(眞瓜)'로 도처에 기록돼 있다. 이래저래 우리말로는 '참외'가 됐다. 요즘 흔한 수입 서양멜론(하얀 그물망 모양의 껍질)은 'muskmelon'이다.

▦청계광장 참외축제는 두 번째 서울나들이고 지난해 서초구 양재동 농협유통센터에서 처음 열렸다. 물론 참외의 본고장 경북 성주에서는 오래 전부터 매년 축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는 5월 1~3일. 참외축제에서는 '맛있는 보약, 비타민의 보고'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어릴 적 할머니는 "건강에 좋다. 많이 먹어라"고 했다가, 또 "많이 먹지 마라. 이불에 오줌 싼다"고도 했다. 참외에 항암ㆍ제암 성분이 있는 것이야 과학적으로 확인돼 있다. 아울러 신장에 힘을 주어 이뇨작용을 돕는다는 것도 옛날 우리 할머니들은 모두 알고 계셨나 보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