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스포츠를 '총성 없는 전쟁'에 비유한다. 총만 들지 않았을 뿐, 정확한 상황 판단과 치밀한 전략이 승패를 좌우하는 점에선 비슷하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 승리 확률을 높이려면 수비에 치중한 소극적인 자세보다는 공격 비중을 높여 적극적인 전략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 권투나 축구에서 약자가 강자를 만났을 때 '선(先) 수비-후(後) 공격'의 단조로운 패턴을 고집하다, 패배를 자초하는 예가 많은 것도 적극적인 공격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삼성이 닌텐도와 애플 따라잡기에 나선다. '위기 속 공격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며 불황 속에서도 '나 홀로 호황'을 누리는 이들 초일류 기업을 벤치마킹 하기 위해서다.
닌텐도는 글로벌 경기침체를 뚫고 세계 시장에서 1억대 이상 판매된 휴대용 게임기 '닌텐도 DS라이트'와 5,000만대의 판매고를 돌파한 가정용 게임기 '위'(Wii)의 제조사이며, 컴퓨터(PC) 업체로 유명한 애플은 '아이폰'이라는 빅 히트작을 선보이며 세계 휴대폰 시장의 트렌드를 바꿔 놓은 업체다.
삼성 수뇌부의 움직임은 이미 시작됐다. 15일 삼성에 따르면 이건희 전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사진) 삼성전자 전무가 13일 일본 출장 길에 올랐다. 주요 거래선인 닌텐도와 소니를 비롯해 도시바와 소프트뱅크, KDDI, 캐논 등 주요 전자 및 통신업체를 방문, 최고경영자(CEO)들과 협력 강화방안을 논의하기 위해서다. 이 전무의 출장 길에는 삼성전자의 부품(DS) 부문장을 맡고 있는 이윤우 부회장과 완제품(DMC) 부문장인 최지성 사장도 동행한다.
삼성의 핵심 경영진이 함께 닌텐도를 찾은 것은 '역발상' 경영으로 게임기 산업을 평정한 닌텐도의 행보가 삼성이 추구하는 '창조경영'의 모델에 적합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실 게임기는 그 동안 어린이들이 주로 갖고 노는 장난감 정도로 인식돼왔다.
하지만 닌텐도는 게임기를 두뇌 발달과 연계해 교육적인 효과를 높이면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는 '생활정보기기'로 인식시키는데 성공했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단기간에 휴대폰 업계의 강자로 떠오른 것은 휴대폰의 개념 자체를 바꿔 놓은 창의적인 경영 전략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정기영 삼성경제연구소장(부사장)은 이날 서울 서초동 삼성 사옥에서 열린 사장단협의회에서 '글로벌 선진기업에서 배우는 위기경영' 주제의 강연을 통해 "재무 유연성과 인적자원 및 기술을 포함한 소프트 경쟁력이 뛰어난 기업을 초일류로 분류할 수 있는데, 닌텐도와 애플이 여기에 해당된다"며 "초일류 기업은 경제위기 속에서도 신규 시장과 고객 공략을 강화하는 한편, 혁신 제품 출시를 가속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선진기업 35개사를 분석한 결과, 애플과 닌텐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저부가가치 생산시설을 폐쇄하거나 인력 및 투자 축소 등과 같이 수비 형태를 먼저 갖춘 다음, 핵심사업에 집중하는 '선 수비-후 공격' 전략을 구사하면서 불황 장기화에 대비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경기침체 속에서도 틈새시장과 고객 공략에 우선 순위를 두고 혁신 제품을 계속 출시해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한 닌텐도와 애플의 경영 전략을 본받자는 분위기가 오늘 사장단 회의에서 느껴졌다"며 "이 전무 등 핵심 경영진의 일본 출장도 이런 차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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