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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칼럼] 행복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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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 칼럼] 행복한 사회

입력
2009.04.15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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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는 지금 행복에 관한 시리즈를 싣고 있다.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필요한 일들을 조목조목 잘 짚어주어 퍽 유익한 연재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논의의 초점이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행복은 개인이 만들어가는 것이지만, 개인이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조건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복에 관한 연구나 성찰은 심리학이나 종교만 해서는 안 되고, 사회과학의 다른 분야들도 함께 맡아야 한다. 예전에는 행복에 관한 관심이 정치철학의 중요한 부분이었으나 근래에는 그런 일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사회학, 경제학, 사회복지학 등에서 행복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한다.

행복의 사회적 조건이 중요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그가 사는 사회가 행복의 조건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돈과 물질적인 생활은 어느 정도 충족되면 더 이상 개인의 행복지수를 올려주지 않는다. 그 다음부터는 다른 조건들이 더 중요해진다. 물질주의에 젖은 사회일수록 구성원의 행복지수는 오히려 낮아진다. 물질의 소유는 더 많은 소유를 원하게 만들고, 따라서 소유 욕구는 영원히 충족될 수 없다. 충족될 수 없는 욕구는 행복보다는 불행감을 자극한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지나친 물질주의와 소비주의는 마땅히 완화되어야 한다.

경쟁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 국가경쟁력 향상이 국가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렸지만, 그것은 결코 국가나 개인에게 삶의 목표가 될 수 없다. 구성원을 행복하게 만들지 못하는 국가경쟁력은 아무 쓸모가 없다. 오히려 그에 대한 강조가 구성원들의 삶을 더 팍팍하게 만들기 때문에 경쟁력 이데올로기는 타파되어야 한다.

사회적 불평등의 심화는 특히 못 가진 자를 불행하게 만든다. 완전히 평등한 사회는 있을 수 없지만, 불평등의 정도가 다수 구성원이 받아들이기 힘들 정도가 되면 그 사회는 불행해진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이러한 여러 조건에서 점점 더 불행한 사회가 되어간다.

불평등 사회의 아래 부분에 있는 다수 구성원들에게는 사회 안전망이 필수적이다. 사회안전망이 잘 돼 있는 사회의 행복지수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높게 나타난다. '낙오한' 사람들이 누릴 최소한의 삶을 보장해주어야 한다. 사회복지 투자를 늘리고 생활환경을 개선해 주어야 한다.

지나친 개인주의는 개인을 불행하게 만든다. 지금 세계는 점점 더 외톨이들의 세상이 되어간다. 각종 모임이나 단체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줄어들고, 방에 틀어박혀 컴퓨터 앞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난다. 여러 정신병리 현상과 자살율이 높아진다. 특히 한국에서 이런 변화의 속도가 두드러진다.

정부는 경쟁과 물질주의, 개인주의를 자극하지 않고 사회적 유대감을 높이는 방향으로 국가 정책을 짜야 한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는 소중한 것이지만, 그것 또한 그 자체로 삶의 궁극적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삶의 목표는 행복한 삶이다. 사회적 유대가 개인에 대한 압박이 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그것 없이 개인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새로운 '행복 이데올로기'를

지난 20년 동안 세상을 지배한 신자유주의는 경쟁, 돈, 소비를 미덕으로 삼아 사람들에게 지나친 싸움을 강요했다. 시장과 경쟁 이데올로기다. 사회적 유대는 파괴되고 삶의 질은 추락했다. 소수의 억만장자들이 생겨나는 사이에 대다수 사람들의 삶은 불행해졌다. 이제 눈을 제대로 뜨고 구성원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물질과 정신의 조화를 추구하고 사회적 유대감이 높은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행복의 정치 사상이 필요하다.

김영명 한림대 정치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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