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코씨는 올해 66세로 도쿄 근교에 산다. 30년 넘게 같이 살아온 남편이 5년 전 세상을 떠났다. 서로 일만 하며 살다 막 은퇴하고 여유 있는 노년을 꿈꾸던 무렵이었다. 남편은 세상을 뜨기 전 3개월 동안 병원에 있었다. 어쩌면 이 시기가 부부가 가장 여유롭게 같이 지낸 시간이었다. 남편이 떠나고 슈코 씨도 오래 앓았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루 종일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날 우연히 TV에서 <겨울연가> 라는 한국 드라마를 봤다. 거기에 목도리로 목을 감싼 배용준이 있었다. 겨울연가>
노년에 찾은 별 폴라리스
슈코씨는 요즈음 한 달에 한번 이상은 서울에 온다. 배용준의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틈틈이 작년부터 새로 좋아하게 된 조성모의 스케줄까지 챙겨야 한다. 일본에서 제대로 된 한류 팬이라면 배용준은 기본이고, 거기에 각자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스타 한두 명은 더 관리해야 한다. 몇 년 전 도쿄 공연에서 본 조성모는 그 달콤한 목소리, 수줍은 미소가 너무 좋았다. 이번에 먼발치에서라도 만나면 그 동안 연습한 그의 신곡 한국어 가사를 불러줘야 한다.
슈코씨의 서울 일정은 생각보다 바쁘다. 같이 활동하는 동호회 총무가 쉴 새 없이 문자로 스타들의 동정을 알린다. '배용준, 청담동 00식당에서 식사중' 그러면 택시를 타고 그 식당으로 간다. 그러나 절대로 식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스타를 불편하게 하는 건 팬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배용준에게 손을 흔들며 환호한다. 배용준이 슈코씨를 향해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이렇게 눈이 마주친 건 지난번 도쿄 팬 클럽 행사 이후 오랜만이다. 너무 감격적이라 눈물이 핑 돈다.
다시 핸드폰이 울린다. '조성모 한 시간 후 김포공항에서 출국.' 슈코씨와 친구들은 서둘러 택시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한다. 일본으로 출국하는 조성모를 김포공항에서 환송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 공항보다는 다른 팬들이 적어 아주 가까이서 조성모를 볼 수 있어서다.
슈코씨는 얼마 전 아들 부부가 부탁한 손자 양육도 단호히 거절했다. 평생을 열심히 일했다. 이제는 매순간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하는 시간이다. <겨울연가> 가, 배용준이 아니었다면 힘들었던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을지 모른다. 혹시 주변 누군가가 노망난 노인이라고 뒷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슈코씨는 개의치 않는다. 겨울연가>
남편과 자신의 연금으로 한 달에 한두 번 서울을 오갈 정도의 경제적 능력은 충분히 된다. 외로움으로 술에 빠지거나 건강을 해쳐 자식들을 힘들게 하지도 않는다. 배용준은 스타이고 슈코씨는 팬이다. 팬은 스타를 선망하고 지지하고 그리워한다. 스타에게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스타와 팬 이상의 사적인 영역으로 들어가지도 않는 것은 슈코씨가 속한 동호회의 제1 원칙이다.
왜 하필 배용준이냐는 물음에 슈코씨는 <겨울연가> 를 봤냐고 반문한다. 배용준은 앞으로만 가던 삶의 모든 시계들을 첫사랑의 시간으로 되돌려놓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단지 추억의 엽서같은 춘천이나 남이 섬의 풍경 때문만이 아니다. 겨울연가>
성숙한 한류로 거듭나
그의 미소, 그의 고색창연한 대사들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름다운 것들을 되돌려 놓았다. 극 중에서 그가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별 폴라리스가 되겠다고 최지우에게 말했을 때, 배용준은 슈코씨의 인생에도 폴라리스로 들어왔다.
한류가 만든 경제적 가치가 3조원이네 어쩌네 하는 말들은 슈코씨에게는 웃기는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경제적 가치로만 환원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스타로 인생을 얻는다. 슈코씨에게서 한류는 지금 가장 성숙한 스타덤과 팬덤으로 거듭나고 있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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