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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슈코 할머니의 배용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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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효의 유씨씨] 슈코 할머니의 배용준 사랑

입력
2009.04.1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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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코씨는 올해 66세로 도쿄 근교에 산다. 30년 넘게 같이 살아온 남편이 5년 전 세상을 떠났다. 서로 일만 하며 살다 막 은퇴하고 여유 있는 노년을 꿈꾸던 무렵이었다. 남편은 세상을 뜨기 전 3개월 동안 병원에 있었다. 어쩌면 이 시기가 부부가 가장 여유롭게 같이 지낸 시간이었다. 남편이 떠나고 슈코 씨도 오래 앓았다.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하루 종일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날 우연히 TV에서 <겨울연가> 라는 한국 드라마를 봤다. 거기에 목도리로 목을 감싼 배용준이 있었다.

노년에 찾은 별 폴라리스

슈코씨는 요즈음 한 달에 한번 이상은 서울에 온다. 배용준의 각종 행사에 참석하고, 틈틈이 작년부터 새로 좋아하게 된 조성모의 스케줄까지 챙겨야 한다. 일본에서 제대로 된 한류 팬이라면 배용준은 기본이고, 거기에 각자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스타 한두 명은 더 관리해야 한다. 몇 년 전 도쿄 공연에서 본 조성모는 그 달콤한 목소리, 수줍은 미소가 너무 좋았다. 이번에 먼발치에서라도 만나면 그 동안 연습한 그의 신곡 한국어 가사를 불러줘야 한다.

슈코씨의 서울 일정은 생각보다 바쁘다. 같이 활동하는 동호회 총무가 쉴 새 없이 문자로 스타들의 동정을 알린다. '배용준, 청담동 00식당에서 식사중' 그러면 택시를 타고 그 식당으로 간다. 그러나 절대로 식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스타를 불편하게 하는 건 팬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첫 번째 일이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배용준에게 손을 흔들며 환호한다. 배용준이 슈코씨를 향해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이렇게 눈이 마주친 건 지난번 도쿄 팬 클럽 행사 이후 오랜만이다. 너무 감격적이라 눈물이 핑 돈다.

다시 핸드폰이 울린다. '조성모 한 시간 후 김포공항에서 출국.' 슈코씨와 친구들은 서둘러 택시를 타고 김포공항으로 향한다. 일본으로 출국하는 조성모를 김포공항에서 환송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본 공항보다는 다른 팬들이 적어 아주 가까이서 조성모를 볼 수 있어서다.

슈코씨는 얼마 전 아들 부부가 부탁한 손자 양육도 단호히 거절했다. 평생을 열심히 일했다. 이제는 매순간 자신을 위해 살아야 하는 시간이다. <겨울연가> 가, 배용준이 아니었다면 힘들었던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을지 모른다. 혹시 주변 누군가가 노망난 노인이라고 뒷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슈코씨는 개의치 않는다.

남편과 자신의 연금으로 한 달에 한두 번 서울을 오갈 정도의 경제적 능력은 충분히 된다. 외로움으로 술에 빠지거나 건강을 해쳐 자식들을 힘들게 하지도 않는다. 배용준은 스타이고 슈코씨는 팬이다. 팬은 스타를 선망하고 지지하고 그리워한다. 스타에게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스타와 팬 이상의 사적인 영역으로 들어가지도 않는 것은 슈코씨가 속한 동호회의 제1 원칙이다.

왜 하필 배용준이냐는 물음에 슈코씨는 <겨울연가> 를 봤냐고 반문한다. 배용준은 앞으로만 가던 삶의 모든 시계들을 첫사랑의 시간으로 되돌려놓았다고 말한다. 그것은 단지 추억의 엽서같은 춘천이나 남이 섬의 풍경 때문만이 아니다.

성숙한 한류로 거듭나

그의 미소, 그의 고색창연한 대사들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아름다운 것들을 되돌려 놓았다. 극 중에서 그가 절대로 움직이지 않는 별 폴라리스가 되겠다고 최지우에게 말했을 때, 배용준은 슈코씨의 인생에도 폴라리스로 들어왔다.

한류가 만든 경제적 가치가 3조원이네 어쩌네 하는 말들은 슈코씨에게는 웃기는 이야기다. 세상의 모든 일들이 경제적 가치로만 환원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스타로 인생을 얻는다. 슈코씨에게서 한류는 지금 가장 성숙한 스타덤과 팬덤으로 거듭나고 있다.

육상효 인하대 교수·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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