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원 이모(34ㆍ동작구 사당동)씨는 10일 오전8시50분 민방위 교육을 받기 위해 동작구민회관을 찾았다. 9시부터 진행되는 교육에 앞서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아 목부터 축였다. 회관 주변은 30대 민방위 또래들의 담배 연기로 어느새 자욱하다. 교육 참가증 도장을 받고 있는데 벨이 울렸다. 교육 시작이다.
"뒤로 가지 마시고 앞줄부터 앉으세요. 4시간 교육을 받기 전에 몇 가지 말씀 드리는데 휴대전화 등은 좀 꺼주세요. 졸지 마시구요." 마이크를 잡은 민방위 관계자의 말이 잔소리처럼 들린다. "우리는 향토의 역군이 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오른 손을 들고 외치는 구호, 애국가 1절 제창은 역시나 '립 싱크'에 가깝다.
푹 꺼진 철제 의자가 이렇게 편안한지 새삼 느낀다. 잠이 쏟아진다. 심폐소생술 등 실습이 진행될 때에는 잠깐 눈이 떠지기도 한다. 이도 잠시,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게 눈꺼풀이라지 않는가. 주변은 이미 '졸음 폭탄'을 맞아 초토화된 지 오래다.
"교육이 끝났습니다. 교육참가 확인 도장을 받으시고 가시면 됩니다." 교육을 한 이도, 받은 이도 하품 섞인 긴 한숨부터 토해낸다. 오후1시, 허기진 배를 달래며 서둘러 회사로 출근한다. 어디든 흔히 볼 수 있는 민방위 교육장의 풍경이다.
# 14일 오전 9시 강서구민회관 강당. 같은 민방위 교육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뭔가 다르다. 딱딱한 이론에다 진부한 동영상 교육 등은 온데 간데 없었다. 돌발 퀴즈를 맞추니 선물도 주고 박수도 터져 나왔다. 교육을 받는 300여명의 눈빛과 표정이 살아 있었다.
이날 진행된 민방위 교육은 조금은 특별했다.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화재 등 각종 비상상황을 가상해 강서구 구립극단 '윤슬'이 준비한 연극 한편이 무대에 올려진 것이다.
'백수 나재수의 취업 성공기'라는 제목의 이 연극은 재수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집안에서의 화재발생, 지하철 내 독가스로 추정되는 가방 발견, 지하 노래방에서 발생한 전기누전으로 인한 화재발생 등 언제 어디든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각종 재난사고 발생 시의 대처요령 등에 대한 이야기로 꾸며졌다.
특히 평소 성실하게 민방위 교육을 받은 재수씨의 침착한 대응 덕에 노래방 손님들은 무사히 대피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고, 재수 역시 소방방재청장으로부터 '용감한 시민상' 수상과 함께 소방서에 취직, 백수를 탈출하면서 연극은 막을 내렸다.
반응도 꽤 좋았다. 교육에 참여했던 한 30대는 "지루하고 딱딱한 민방위 교육을 연극을 통해 받아보니 재미도 있고 알찬 것 같다"며 흐뭇해 했다. 연극을 연출한 구립극단 '윤슬'의 송미숙 상임 연출가는 "구청으로부터 민방위 교육을 연극으로 꾸며 달라는 요청을 받고 연기자들과 수 차례 회의를 한 끝에 한 편의 연극이 완성됐다"고 말했다.
강서구 자치행정과 허용하(40) 주임은 "교육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잠을 자는 대원들을 보면서 고민이 많았다"면서 "민방위 교육이 생동감 있는 교육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돼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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