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가 무엄하게도 '안주인'에게 혐의를 떠넘기는 것일까. 그렇다면, 노발대발해야 할 안주인은 왜 태연히 '검은 돈' 수수의 굴레를 뒤집어쓰려 할까.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서 받은 3억원을 두고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 권 여사가 납득하기 어려운 태도를 보이면서, 이것이 노 전 대통령측의 치밀한 전략의 일부가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박 회장은 정 전 비서관에게 2006년 서울역 주차장에서 3억원을, 2007년 6월 청와대 총무비서관실에서 10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10억원)를 줬다고 진술했다. 3억원은 정 전 비서관 몫으로, 100만 달러는 "노 전 대통령에게 전해달라"며 줬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그러나 정 전 비서관의 진술은 박 회장과 미묘하게 다르다. 100만 달러를 받은 것은 맞지만 심부름 대상은 노 전 대통령이 아니라 권 여사라는 것. 여기에 한 술 더 떠 3억원도 권 여사의 돈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3억원의 경우 처음에는 정 전 비서관 자신이 먼저 요구해 받았다고 했다가, "100만 달러를 '저의 집'(경상도에서 부인을 뜻하는 말)에서 부탁해 받아 썼다"는 노 전 대통령의 사과문이 발표된 이후 말을 바꿨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권 여사도 정 전 비서관의 영장실질심사 때 "3억원은 내가 받은 것"이라는 내용의 문서를 법원에 제출해 보조를 맞췄다. 물론 이들의 주장이 진실이며 정 전 비서관이 권 여사 보호를 위해 3억원 수수 혐의를 떠안으려 했다가 포기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권 여사한테 혐의를 몰아 모두 살아남기' 전략의 일환 아니냐는 분석이 적지 않다. 100만 달러의 수수자가 노 전 대통령이 아닌 권 여사였다는 주장에 힘을 싣기 위해 3억원도 권 여사가 받았다는 주장을 편다는 얘기다.
이 경우 "권 여사가 남편 몰래 100만 달러를 받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는 세간의 의문에 "권 여사는 이미 3억원을 받은 적도 있다"고 맞받아칠 수 있다. 최근 노 전 대통령 측근들이 '권 여사가 받은 13억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의도된 발언으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권 여사는 공무원이 아니라 부정한 돈을 받아도 처벌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실리측면에서 나쁘지 않은 전략이다. 그러나 100만 달러가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씨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 전략이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게 됐다. 긴급 전략 수정 여부가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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