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개봉하는 독립영화 '똥파리'를 보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종영 뒤 영어 제목 'Breathless'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용역 깡패와 해결사로 하루하루를 소비하는 상훈과 주변 사람들이 저지르는 가정 내 폭력의 쳇바퀴 앞에 눈이 질끈 감기기 일쑤다. 이 영화에서 핏줄의 의미는 빈곤과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곧잘 희석되고, 지독히도 끔찍한 물리적 관계로 전락한다.
필름이 혈관을 타고 도는 듯한 고통스러운 장면들을 아랑곳하지 않게 보여주면서, 영화는 '두 눈 부릅뜨고 현실을 보라'고 강권한다. 심장을 따갑게 하면서 눈물까지 바치게 만드는 이 영화, '똥파리'는 네덜란드 로테르담 영화제 최고상인 타이거상 등 해외 영화제서 8개의 상을 받았다.
'똥파리'의 주인공 상훈역의 연기와 연출을 맡은 양익준(34) 감독은 "살아오면서 듣고 보고 경험한 일상의 일들을 다뤘다"고 말했다.
"때론 불편한 이야기로 마음이 통하기도 한다. 친구와 대화하듯 일기 쓰듯 만든 영화다. 한국의 많은 가족에게서 내가 봐온 장면들을 그대로 넣었다. 사회가 '너는 안 돼'라고 선을 그어버린 사람들, 불쌍하고 안타까운 똥파리 같은 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양 감독의 삶은 비포장도로를 걸어왔다. 서울 변두리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중학교 시절부터 담배를 피고 술을 마셨다. 딱히 불량학생은 아니었다. 단지 환경이 그랬다. 상업고등학교를 다녔고 군 입대 전 영업사원과 짐꾼 등의 일을 했다.
수 틀리면 말보다 주먹과 발이 먼저 나가는 영화 속 지랄 맞은 상훈의 모습이 은근히 그의 삶의 궤적과 교집합을 이룬다고 예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양 감독은 "나는 누굴 먼저 때리지 못한다. 먼저 얻어 맞고 기절한 기억만 많다"고 말했다. 헤프다 싶을 정도로 쏟아지는 그의 해맑은 웃음은 그의 답변을 보증하는 듯했다.
그는 제대하면서 자신의 길을 잡았다. 연기였다. 공주영상대학교 연기과에 진학했고, 단편영화 등 40여편에 얼굴을 남겼다. 2002년 '품행제로'로 상업영화 데뷔식을 치렀고, 2003년 '해피에로크리스마스'에선 제법 비중 있는 역도 했다. 비록 "○○도에서 막 상경한 듯한 촌스러운 모습"이 캐스팅의 이유였지만….
2005년 중편영화 '바라만 본다'로 감독의 길에도 발은 디딘 그에게 '똥파리'는 마치 배설을 하듯 시작한 영화다. 그는 문득 2006년 '똥파리'라는 제목을 떠올렸고, 바로 시나리오 집필에 들어갔다.
"쏟아내듯 써내려 갔다. 영화 속 등장인물 한 명만 별도의 취재를 했을 뿐이다. 친구 등 내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라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그가 설립한 제작사 '몰'(Mole)을 통해 2006년 10월 촬영에 들어갔다. "몰은 두더지라는 뜻이다. 나를 포함해 스태프 대부분이 반지하에 사니 그렇게 지었다."
영화 제작은 전쟁과 다름 아니었다. 특히 돈과의 전투는 피를 말렸다. 2억5,000만원(밀린 인건비를 제외하면 1억 5,000만원 가량) 중 70%가 빚이었다. 처음엔 부모님께 손을 벌렸고, 나중엔 친구들의 주머니에 기댔다.
5년 반 동안 살며 정들었던, 촬영장소로도 활용된 서울 난곡동의 그의 반지하방 전세금 1,700만원도 '똥파리'가 먹어치웠다. 그래도 돈이 말라 3분의 2정도 분량을 촬영한 뒤 3명만 남기고 대다수 스태프들을 돌려세웠다.
"돈 빌리려고 전화 거는 게 일이었다. 7, 8명 통화해야 1명에게 융통이 됐다. 빌리고 갚지 못해서 괴롭기도 했다. 큰 빚은 거의 다 갚았다. 사실 1만원, 10만원 빌린 경우도 있다. 장부에 기록되지 않은 빚 때문에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다."
'똥파리'가 비상하면서 주류 영화계의 러브콜도 있었다. 두 군데서 영화연출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성향도 안 맞았지만 지금은 할 수가 없다"는 게 이유였다.
"몸이나 정신이나 너무 많이 소모됐다. 6개월에서 1년 정도 지방으로 도망가고 싶다. 주류영화에 대한 거부감은 전혀 없다." 그러나 그는 "간섭은 최소한만 받고 싶다"고 했다.
"지금 충무로에선 관객이 보기 좋아하는 영화에만 신경을 쓰면서도 100편 중 90편이 망가지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다. 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것이다. 그래서 돈 벌면 반지하에서 탈출할 수 있고, 빚을 갚을 수 있어 좋을 거다. 내 연봉이 500만~700만원이다. 쓸 만큼만 벌면 나는 충분히 행복하다."
●영화 '똥파리' 시놉시스
아버지의 폭력에 의해 가정이 파탄 난 용역 깡패 상훈(양익준)은 걸핏하면 욕설에 주먹질이다. 배다른 누나를 지극히 혐오하고 아버지에게조차 폭력을 휘두르면서도 어린 조카에게선 혈육의 정을 느끼는 상훈은 어느날 우연히 만난 여고생 연희(김꽃비)에게 마음을 연다. 가정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억척스레 살아가는 연희와 상훈은 서로의 상낯?감싸 안으며 힘겨운 삶서 조금씩 희망을 찾는다. 그러나 빈곤의 악순환이라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결국 상훈의 발목을 잡는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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