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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칼라불레와 'Money Tal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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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칼라불레와 'Money Talks!'

입력
2009.04.15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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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어에 '칼라불레(Kalabule)'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매수, 뇌물제공, 부패 등을 뜻하는 것으로 기업과 정부 관리들의 부적절한 협력 방식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1981년 군사쿠데타로 집권한 가나의 제리 롤링스가 관직을 이용해 개인의 부를 축적해 온 부패 엘리트들과 전쟁을 벌이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19년간 장기 집권했던 롤링스도 2000년 12월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존 쿠푸오르에게 정권을 넘겼다. <돈과 인간의 역사> (이마고 발행)에 나오는 내용이다.

한 기업인과 전직 대통령 가족이 결탁한 한국판 '칼라불레' 사건으로 온 나라가 정신이 없다. 청와대 안에서 달러 뭉치가 오가고, 대통령의 부인, 아들, 형 등 가족이 '주연'으로 총출동하는 이런 드라마도 다시 보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또 이전 권력의 핵심부에 있던 '조연'들이 검은 돈 거래로 줄줄이 감방으로 가는 것도 그렇고, 현재 권력의 핵심부까지 검은 실타래가 뻗어 있는 것도 놀라울 뿐이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수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한 죄로 수의를 입었던 전례를 그대로 밟아 가는 듯하다. 차이가 있다면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우 재벌들과 결탁을 한 것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중소기업 수준의 자본가들과 검은 고리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재산도 있을 만큼 있고 대통령씩이나 했는데 무슨 돈이 그리 필요한지 의문이지만, 검찰수사에서 허기와 갈증을 채우듯 돈을 빨아들인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정상적인 기업 행위는 고용창출, 제품생산 등을 통해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을 준다. 하지만 권력과 결탁해 쉽게 부당이득을 챙기는 기업 행위는 결국 다른 경쟁기업의 이득을 빼앗고 낙담시킨다는 점에서 시장 기능을 교란하는 것이다. 여기에 권력과 기업의 결탁을 철저하게 막아야 할 이유가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역사학 교수였던 액튼 경(Lord Acton)은 "권력은 부패하기 쉽다. 절대적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고 했다. 가까운 현대사만 살펴봐도 이 말이 잘 들어맞지만, 경험으로 볼 때 개선의 여지는 없고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 불행이다. 부패의 근원에는 통상 기업과 돈이 있었다. 기업가는 권력을 이용해 손쉽게 많은 돈을 벌려 하고, 권력은 직위를 이용해 그 대가를 받아 축적하는 것이다. 청와대 행정관 성접대 사건도 권력에 대한 기업 로비에서 비롯됐다. '장자연 리스트'는 '쉽게 떠서 돈을 벌겠다', '돈이면 다 된다(Money Talks!)'는 연예계의 천박한 토양과 기이한 권력관계에서 탄생한 것이다.

아랍어로 마몬(Mammon)은 재산을 뜻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등에 따르면 이 단어가 성서에서는 '지상의 부'라는 뜻으로 주로 쓰이는데 인간을 타락시키는 탐욕의 화신, 하느님과 대립된 우상 등으로 간주된다. 기독교를 비롯한 많은 종교가 '부'를 우상 숭배ㆍ탐욕의 화신, 정신을 병들게 하는 악령의 도구 등으로 여긴다. 예수는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고 했다. 마몬 신의 '위력과 위험'의 양면성을 경고하는 말이다.

소금 먹은 놈이 물을 켜는 것이 이치다. 검은 거래는 언젠가 드러나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누군가 남몰래 물을 켜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조재우 경제부차장 josus6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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