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6월 박연차(64ㆍ구속) 태광실업 회장에게 직접 요청해 100만 달러를 받은 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참석 길에 미국 유학 중인 아들 건호씨에게 전달한 것으로 의심할 만한 구체적인 정황(본보 11일자 1면)이 드러났다.
13일 검찰에 따르면 박 회장은 2007년6월25일 당시 정상문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부터 "대통령이 전화를 할 것"이라는 연락을 받은 직후 노 대통령으로부터 "미국에 있는 건호에게 줄 자금이 필요하다. 29일까지 100만 달러를 준비해달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이어 "날짜가 너무 촉박해 직원 130명을 동원해 급하게 환전한 뒤 100만 달러를 서류가방에 담아 29일 정 전 비서관을 통해 청와대 관저에서 노 전 대통령측에 전달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검 중수부(부장 이인규)는 노 전 대통령이 6월30일 IOC 총회 참석 차 과테말라로 가는 길에 미국 시애틀을 경유하면서 건호씨를 만나 100만 달러를 전달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당시 시애틀 총영사를 지낸 권모씨와 건호씨의 미국 내 경호원 이모씨를 최근 잇따라 소환, 노 전 대통령과 건호씨의 당시 행적을 조사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박 회장이 건넨 100만 달러의 최종 수수자가 노 전 대통령이라고 판단, 포괄적 뇌물 혐의로 사법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측 김경수 비서관은 "당시 노 대통령이 박 회장에게 전화를 건 적도, 건호씨에게 돈을 건넨 적도 없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11일 검찰 조사를 받은 부인 권양숙 여사는 자신의 요청으로 박 회장에게 100만 달러를 받아 채무변제에 사용했다고 진술했지만, 달러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일절 답변하지 않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이와 관련,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누구한테 돈을 받았다는 것과 어디에 썼느냐는 별개의 문제"라며 "검찰은 돈 받은 게 확인됐으면 사용처는 수사 본류가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36)씨가 박 회장에게서 받은 500만 달러의 일부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36)씨와 공동 설립한 회사로 유입된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연씨와 건호씨가 회사를 공동 설립한 경위를 조사하는 한편, 박 회장이 연씨에게 500만 달러를 건넬 때 작성했다는 계약서 초안을 제출받아 진위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계약서에는 박 회장의 서명 등이 없어 진본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편 홍 기획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노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를 통해 입장을 밝히는 것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의 반응은 이해하지만 수사는 정치 영역이 아니라 사법의 영역"이라며 "장외에서 논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진희 기자
권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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